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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의 역습과 한국의 대응 2018-2025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 부과로 촉발된 미국발 관세 전쟁은 세계 경제 지형을 뒤흔들었다. 철강·알루미늄에서 시작된 보호무역주의 관세 폭탄은 자동차, 반도체 등 핵심 산업으로 번지며 미·중 무역전쟁으로 확산되었고, 글로벌 교역 성장률은 급속히 둔화됐다. 특히 한국은 동맹국임에도 타겟이 되어 관세 유예와 협상 압박을 반복 경험했다. 2018년 관세 충격에 대비한 한국 정부·산업계의 긴박한 대응부터 2025년 8월 1일 상호관세 유예 만료를 앞둔 대미 협상까지, 한국은 파고를 넘기 위해 분투해왔다. 이제 관세 전쟁 시대에 세계 각국이 취한 생존 전략을 돌아보고, 한국이 국익을 지키기 위해 택해야 할 길을 모색한다.

2018년 철강 관세 폭탄과 관세전쟁 서막

2018년 3월,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수입 철강 25%, 알루미늄 10%의 관세 부과를 전격 결정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값싼 철강 유입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자, 무역적자 축소와 제조업 부흥을 노린 대담한 보호무역 정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은 좋으며 이기기 쉽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고, 주요 교역국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 미국 철강 수출 비중 세계 3위였기에 25% 관세는 막대한 타격이 될 전망이었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발빠르게 대응했다. 곧바로 워싱턴과 협상에 나서 2018년 3월 말 한미 FTA 개정 협상과 연계해 절충안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산 픽업트럭 관세 철폐 시점을 2041년으로 20년 연장하고, 미국산 자동차 수입 규제 완화 등 양보안을 수용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한국산 철강을 232조 관세 대상에서 영구 면제하고, 대신 대미 철강 수출을 2015~2017년 평균의 70% 수준(약 268만 톤)으로 제한하는 쿼터를 설정했다. 알루미늄 관세는 끝내 면제받지 못했으나, 철강만큼은 관세 대신 수출량 쿼터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산업계는 쿼터로 일부 수출 기회를 잃었지만 25% 관세라는 최악은 면하며 한숨을 돌렸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은 동맹국들도 강하게 자극했다. EU와 캐나다, 멕시코 등은 “국가안보 이유로 동맹에 관세를 매긴 건 모욕”이라며 반발했고, 즉각 보복관세를 발표했다. EU는 6월 미국산 버번위스키·청바지·오토바이 등에 25% 관세를 매겨 상응 조치를 취했는데, 상징적으로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과 리바이스 청바지 등을 겨냥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캐나다도 미국산 철강제품과 농산물에 보복관세로 맞섰다. 세계무역기구(WTO)엔 각국의 제소가 빗발쳤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미국 232조 철강관세의 WTO 규범 위반 여부를 다투는 절차를 개시했고, 다자무역 질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2018년은 미국의 관세 공세로 글로벌 무역전쟁의 서막이 오른 해였다. 세계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2017년 5% 내외이던 전세계 교역 증가율은 2018년 3%대로 둔화되었고, 각국 기업들은 투자 계획을 주춤하며 무역 불확실성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보호무역 기조로 “세계는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경고가 나왔고, 한국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들은 미·중 관세갈등이 현실화되면 한국 성장률이 수출 부진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우려 속에 향후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2018~2019년 미·중 관세 전면전과 자동차 관세 위협

232조 철강 관세는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미국은 중국을 정조준한 관세전쟁을 전개한다. 2018년 7월부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무역법 301조 조사에 따른 대중국 관세 부과를 개시했다.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수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25%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예컨대 2018년 7월 6일 340억 달러 규모 품목 25%를 시작으로, 8월에 추가 160억 달러, 9월에는 무려 2,000억 달러어치에 10% 관세(이후 25%로 인상) 등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국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전자제품, 가구, 부품 등 광범위한 품목이 대상이었다. 이에 중국도 즉각 보복해 미국산 대두, 자동차, 항공기 부품 등에 맞관세를 매겼다. 양국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응수로 치달았고, 세계 양대 경제 대국 간 관세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는 미·중 충돌의 직격탄은 아니었으나 교차 피해를 입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 큰 수출을 하는 나라다 보니, 양국간 관세 보복으로 인한 무역량 감소와 세계 경기 둔화의 피해자가 되었다. 실제로 2019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급격히 꺾였고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력 품목의 단가 하락과 대중 수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행은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이 최대 0.4%p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중국이 미국 관세에 맞서 자국산 부품 조달을 늘리고 수입 다변화를 꾀하면서 판로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중국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어서, 미국의 대중 제재로 첨단장비 반입이 막히는 등 기술패권 경쟁의 간접 영향도 받기 시작했다.

미·중 모두 한국에 자국 편에 설 것을 압박하는 기류도 생겨났다. 한국 정부는 안보 동맹국 미국과 경제 파트너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친미 반중'으로 기울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이, 반대로 친중 행보는 미국의 견제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간 중립 기조를 취하며 조용한 외교로 대응했다. 한편으론 수출시장 다변화와 소재·부품 국산화 등 장기 대응책을 내세웠다. 2019년 7월에는 일본이 정치적 갈등으로 한국에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가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한국은 글로벌 통상환경의 급변 속에서 경제안보 전략의 중요성을 절감해야 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뿐만 아니라 자동차 관세 카드를 꺼내 들며 동맹국들을 다시 압박했다. 2018년 5월 미국 상무부는 수입자동차 및 부품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232조 조사를 개시했다. '외국산 자동차가 미국 자동차산업을 잠식한다'는 논리로 최대 25% 관세 부과 가능성을 검토한 것이다. 이는 독일, 일본, 한국 등 주요 자동차 수출국에 큰 위협이었다. 미국으로 자동차를 대거 수출하는 이들 국가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은 앞서 FTA 개정으로 일단 한숨 돌렸지만,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2018년 7월, EU 집행위원장 장클로드 융커는 워싱턴을 긴급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벌였다. 그 결과 미국과 EU는 자동차 관세 부과 보류 및 향후 무역협상 개시에 합의하며 일종의 휴전을 만들었다. EU는 미국산 대두 수입을 늘리고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를 약속하면서, 관세전쟁의 확전을 막고 시간을 벌었다. 일본도 미국과의 직접 충돌을 피해 양자 협상으로 선회했다. 아베 정부는 2019년 미국과 농산물·공산품 시장 일부 개방을 담은 미일 무역협정을 맺어 (TPP 탈퇴로 잃을 뻔한 미국시장 기회를 보전하는 수준에서) 자동차 관세 폭탄을 피해갔다. 일본은 또한 미국산 농산물 추가 수입 등 우호적 조치를 보이며 트럼프의 심기를 달랬고, 덕분에 232조 자동차 관세는 끝내 현실화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11월 법정 시한까지 결정을 연기하더니 임기 내내 25% 관세를 발동하지 못했고, 동맹과의 마찰을 더 키우는 데 주저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간 관세 전쟁은 2019년에도 거칠게 이어졌다. 글로벌 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2019년 세계 제조업 PMI 지수는 급락했고, IMF와 OECD 등은 잇달아 세계성장률 전망을 하향조정했다. WTO는 2019년 세계 상품교역 증가율이 1.2%에 그쳐 예상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관세전쟁이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결국 2019년 12월, 미국과 중국은 추가 관세 인상을 중단하고 협상에 나섰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워싱턴에서 이른바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체결된다. 중국은 2년에 걸쳐 미국산 농산물 등 2,000억 달러어치 추가 구매를 약속하고 일부 금융시장 개방을 양보했다. 미국은 12월로 예고했던 휴대폰·노트북 등 소비재에 대한 관세(약 1,600억 달러 상당)를 보류하고, 9월 부과한 15% 관세의 절반(7.5%)으로 인하해 화답했다. 비록 근본적 갈등은 미봉됐지만, 관세 전쟁은 일단 휴전 국면에 들어갔다.

2020~2021년 팬데믹 속 휴전과 기습적인 통상 전선 확대

2020년 초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전세계 무역은 급감했고, 미·중 무역전쟁도 한숨 돌리는 듯했다. 글로벌 수요 붕괴로 2020년 세계 교역은 전년 대비 5.3% 위축되었고, 미국도 중국도 상대와 다투기보다는 방역과 경기부양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국 역시 수출이 급감하고 생산차질을 빚었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비대면 경제 특수로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이 회복세를 보이며 버텼다. 이 시기 미·중 1단계 합의가 유지되었으나, 중국은 약속한 미국산 구매량을 채우지 못했고 긴장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제 통상환경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복원을 외치며 다자주의를 표방했으나, 트럼프 시대의 관세 상당수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미국 내 보호무역 정서는 양당을 막론하고 높았고,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도 이어졌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 공조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우선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들과 얽힌 철강 관세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미국은 EU와 전격 합의하여, 트럼프의 25%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철폐하진 않되 일정 물량까지는 무관세 수입이 가능한 관세할당(TRQ) 제도로 전환하기로 했다. 2022년엔 동일한 합의를 영국, 일본과도 맺었다. 이로써 유럽·일본산 철강의 대미 수출이 부분 정상화되었으나, 한국은 이러한 혜택에서 배제되어 여전히 2018년 쿼터에 묶인 상태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동맹국들 간 차별”이라며 미국 측에 쿼터 완화나 철폐를 요구했지만, 워싱턴은 “한국은 이미 2018년 합의로 해결된 사안”이라며 소극적이었다. 한국 철강업계는 미국 수요 급증으로 쿼터가 조기 소진되는 상황을 우려, 수출 물량 배분에 고심해야 했다.

동시에 미국은 통상 압박의 초점을 기술·공급망 분야로 넓혀갔다. 2020년 트럼프 말기에 미국은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고, 2021년 바이든은 이를 유지하며 동맹들에게도 대중 첨단기술 수출통제 동참을 요청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메모리칩을 글로벌 시장에 판매해왔는데, 미국 제재로 첨단장비 반입 제한 및 중국 내 생산규모 제약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다행히 한국 정부의 건의로 미국은 삼성·하이닉스에 대해 중국 공장 유지에 필요한 장비 반입을 1년간 한시 허용하는 유예를 부여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한 반도체 공급망 동맹(이른바 칩4) 논의에도 참여해 협력을 모색하면서도, 한중 경제관계를 감안해 신중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기술패권 시대, 반도체는 안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국은 세계 메모리 1위국으로서 더욱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2022년에는 미국이 기후대응과 산업정책을 결합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여 새로운 통상마찰을 낳았다. 이 법은 전기차 보조금을 미국 내 생산 차량에만 지급토록 규정, 현대차·기아 등 한국 업체가 즉각 피해를 보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동맹 역차별”이라 강력히 항의했고, 한미 고위급 협의 끝에 상업용 리스 차량에 대한 보조금 예외 적용 등 일부 보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국 중심 제조업 육성 기조는 확고했다. 한국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리고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전략으로 대응하는 추세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고, 현대차도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 가서 만들라'는 압박에 한국 기업들은 선택지를 좁혀가는 형국이다. 이는 국내 투자와 일자리 감소 우려로 이어져 산업공동화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요컨대 바이든 시기 미국은 동맹을 적대시했던 트럼프식 관세폭탄은 자제했으나, 동맹까지 끌어들인 대중 포위망 전략 속에 새로운 통상장벽을 구축했다. 한국으로서는 노골적 관세 전쟁 한복판은 벗어났지만,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전략산업에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경쟁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2023년 이후 한국 수출은 미·중 경기둔화와 기술패권 경쟁 등의 여파로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출주도 성장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공급망 재편과 통상질서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지 국가 전략 논의가 한창이다.

2025년 트럼프 복귀와 관세전쟁 2막 ,‘상호관세’ 협상 공방

2025년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각국의 대미 관세율을 비교한 ‘Reciprocal Tariffs(상호관세)’ 도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나라에 동일한 수준의 관세로 맞서겠다는 논리로 상호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기본 10%+추가 15% 등 최대 25%의 관세율을 책정하고 90일 유예를 부여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초 한층 공격적인 무역공세로 돌아왔다. 취임 직후 '상호관세'란 이름의 포괄 관세 정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는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만큼 똑같이 매긴다”는 트럼프 특유의 논리를 정책화한 것으로, 동맹국도 예외가 없었다. 2025년 4월 9일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EU, 일본 등 56개국에 대해 국가별 차등 관세를 발효시켰다. 한국의 경우 이미 적용 중인 기본 10% 관세에 더해 15% 추가 관세를 매겨 총 25%로, 사실상 관세율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였다. 특히 자동차에는 25%, 철강·알루미늄에는 무려 50%의 별도 고율 관세를 책정해 놓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발효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부과 유예를 선언했다. 무차별 관세 폭탄을 일단 3개월 유예하고, 그 사이 미국과 협상에 나서라는 압박이었다.

'90일 시한부 휴전'이 주어지자 동맹국들은 분주해졌다. 유예 만료일이 다가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 연장할 수도, 조기 종료할 수도 있다”며 갈피를 잡기 어렵게 만들었다. 백악관 대변인은 “연장될 수도 있지만 결정은 대통령 몫”이라고 여지를 남겼고, 재무장관은 9월 1일 노동절까지 주요 무역파트너와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일괄 연장, 부분 연장, 예정대로 부과 등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가운데, 한국은 바짝 긴장했다. 트럼프 특유의 '거래의 논리'상 한국이 협상에서 밀리면 연장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국가만 유예 연장할 경우 한국을 뺄 수도 있다는 식의 압박을 흘리며 한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현재, 한국 정부는 막판 대미 통상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건 뻔하다. 이미 드러난 협상 의제만 봐도 철강·자동차 관세 영구 면제를 대가로 한국의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미국산 자동차 인증 완화, 디지털 무역규제 완화, 환율 투명성 제고 등이 망라돼 있다. 여기에 미국이 관심 갖는 에너지 분야 투자, 예컨대 알래스카 LNG 가스전에 한국 기업 투자와 방위비 분담 증액 등 안보 이슈 연계 압박까지 가해지는 분위기다. 말 그대로 경제와 안보를 통틀어 '원스톱 쇼핑'식으로 미국의 국익을 관철하려는 전략이다. 한국으로선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요구들이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미일 정상회담을 감안해 동맹 이탈을 최소화하려 일괄 8월 1일 연장을 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7월 9일 시한을 8월 1일로 한 차례 미룬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8월 1일 유예 종료까지 시간은 금세 흐르고, 미국의 압박은 거세질 공산이 크다. 최근 방미한 한국 협상단은 “엄중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긴박감 갖고 임해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결국 관건은 한국이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어낼지다. 한국 측 목표는 철강·자동차 등 주력품목의 관세 철폐 또는 유예 연장일 것이다. 특히 2018년 쿼터로 묶인 철강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농산물 개방 등 민감한 양보는 최소화하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FTA 바깥의 분야(예: 환율투명성 합의)는 비구속적 선언 수준으로 막아내는 협상력이 요구된다.

한국 산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자동차 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25% 관세 부과)에 대비해 수출차종 조정과 현지생산 확대 플랜B를 검토 중이다. 철강업계는 최종 타결까지 수출 물량 관리와 대체시장 확보를 모색한다. 반도체 등은 직접 관세보다는 미국의 對중 수출통제 협상 내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8월 1일 이후 전개에 따라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자칫 협상 실패로 25% 상호관세가 현실화되면 대미 수출의 대부분 품목에서 가격경쟁력이 급락하고, 우리 기업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지금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통상위기”라고 평가하며 “산업계와 정부가 합심해 국익을 지켜낼 지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국 관세전쟁에 맞선 3國 사례: 중국·EU·베트남, 각자의 해법

전 세계 각국은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미국의 관세 공세에 저마다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받는 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향후 한국의 전략에도 시사점을 준다.

중국의 정면승부와 내수 부양 :중국은 트럼프 1기부터 가장 거칠게 맞붙은 당사자다. 중국은 처음엔 미국산 제품에 동일한 규모의 관세를 매겨 맞불을 놨다. 대두, 자동차, 항공기 등 미국 주력산업을 겨냥해 정치적 압박을 극대화했다. 동시에 위안화 평가절하를 용인하고 수출세액환급 확대 등으로 자국 기업 피해를 완화했다. 관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대규모 내수 부양책도 동원했다. 인프라 투자와 소비쿠폰 지급 등으로 경제 성장률 방어에 나선 것이다. 특히 미국산 농산물을 대체할 수입선을 브라질 등으로 돌리는 등 무역 다변화에 힘썼다. 이러한 대응으로 중국 경제는 성장률 둔화에도 즉각 붕괴를 피했고, 협상 국면에서 지렛대를 확보했다. 2020년 초 1단계 무역합의에선 추가 관세 일부 철회와 중국 경제체제에 대한 미국 요구 최소화를 얻어내며 시간을 벌었다. 이후 바이든 정부 들어 직접적 관세 충돌은 소강상태이나, 중국은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등 반격 수단을 비축해두고 있다. 요컨대 중국은 강력 대응+협상 병행으로 미국의 요구에 전면 굴복하지 않고 자국 핵심산업을 보호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EU의 통합된 보복과 동맹 내 협상력 극대화 :유럽연합(EU)은 미국의 관세 공세에 신속하고 단합된 보복조치로 대응한 사례다. 2018년 철강관세에 직면하자 EU 28개 회원국은 한 목소리로 비난하며 곧바로 미국산 상품 32억 달러분에 25% 보복관세를 발동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위스키, 모터사이클, 청바지 등을 표적으로 삼아 미국 여론과 의회에 압박을 가한 것이다. 동시에 WTO에 제소하여 규범 수호 의지를 보였다. EU의 강경 대응은 트럼프 행정부에 협상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결국 2018년 7월 미·EU 정상회담에서 추가 관세 보류 합의가 이끌어졌고, 이는 EU가 자동차관세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 데 기여했다. 이후에도 EU는 미국과 치열한 협상 끝에 2021년 철강분쟁 해결(TRQ 합의), 항공보조금 분쟁 중재 등 점진적 성과를 냈다. EU의 강점은 경제 블록의 규모를 무기삼아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한 점이다. 단일국으로는 미국에 열세여도 27개국 시장을 합쳐 대응하니 미국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EU는 장기 전략으로 자체 산업 보조금 정책(예: 첨단기술 분야)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등 새로운 무역규범을 추진하며 미국에 간접 압박을 가했다. 이처럼 EU는 강경 대응과 다자주의 옹호로 회원국 산업을 지키고, 동맹인 미국과는 협력 속 타협을 이끌어낸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베트남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발상 전략 : 의외의 승자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이득 본” 대표적 국가로 떠올랐다. 미·중 관세공방 속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생산기지를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면서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제품, 가구 분야에서 '메이드 인 베트남'이 중국산을 대체하며 2019~2020년 베트남 수출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베트남 정부의 독특한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산 상품에도 관세 위협을 하자, 베트남은 맞보복을 피하고 오히려 대미 관세를 인하하는 역발상으로 응수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베트남에 20% 관세를 부과하자 베트남은 미국산 제품 관세를 전면 철폐하는 통 큰 조치를 취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결과 미국 소비자들은 저렴한 베트남 제품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미국 내 보호무역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베트남은 이렇게 비대칭 전략으로 미 행정부 대신 미 국민과 기업을 우군으로 만드는 효과를 거뒀다. 또한 미국과 긴밀한 무역협정을 체결해 관세 문제를 협상으로 풀고, 원산지 규정 강화로 중국의 우회수출 단속도 합의했다. 베트남의 GDP는 무역전쟁 기간에도 연 7-8% 성장하며 흔들림 없었고, 국제사회에선 “베트남의 영리한 무역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작은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유연한 통상정책과 친미외교로 오히려 투자 유치를 극대화한 사례다.

한국의 선택, 국익 수호를 위한 실용 통상 전략

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국은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산업 보호 전략과 외교 해법을 구사해왔다. 세계 6위 수출대국인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지난 7년간 한국은 때로는 양보와 협상으로, 때로는 WTO 제소와 다자 공조로 위기를 넘겨왔다. 이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글로벌 통상환경의 뉴노멀은 보호무역 기조의 상시화, 기술과 안보 연계 통상, 그리고 블록화된 경제권의 부상으로 요약된다. 한국이 이 흐름에서 국익 극대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무엇보다 실용주의 외교와 경제안보 전략이 핵심이다. 중국처럼 정면대결도, EU처럼 동맹대동단결도 한국에겐 쉽지 않다. 한국은 미·중 사이 중견국으로서 우리만의 현실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통상 현안별로 실리 추구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과는 안보동맹을 토대로 신뢰 구축을 강화하되, 협상에선 할 말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철강 관세 쿼터 철폐나 전기차 보조금 차별 철회 등은 근거를 가지고 집요히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방위비나 기술동맹 이슈에서는 우리도 협조할 부분은 하는 빅딜 전략을 구사해 상호 윈윈을 도모할 수 있다. EU·일본과는 공조를 강화해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집단 대처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둘째, 산업 경쟁력 제고와 공급망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세전쟁은 결국 산업 패권 경쟁의 한 단면이다. 한국 주력산업인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이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속에 흔들리지 않도록 국내 생산기반을 튼튼히 하고 핵심 기술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동시에 미국, 유럽, 동남아 등과 공급망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해 탈중국 다변화를 추진함으로써 대외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첨단전략산업 특별법 제정 등으로 투자 지원에 나섰는데, 이를 실효성 있게 집행하여 기업들의 국내 설비 투자를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다자무역체제와 경제협력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WTO 분쟁 해결 기능이 약화되었다 하나, 한국이 추구해온 자유무역 질서의 틀은 여전히 유용하다. 한국은 중견국 그룹과 연대해 보호무역에 제동을 거는 규범 개선 논의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미국이 탈퇴한 CP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등을 통해 다양한 경제권과 교류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고 협상력 지렛대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끝으로, 국민과 기업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통상 정책은 결국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치므로, 피해 업계 지원과 산업구조 조정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관세전쟁으로 타격받은 철강업계에는 세제지원과 수출시장 개척을 도와야 하고, 농축산 등 개방 확대 업종에는 보완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피해 최소화와 장기 경쟁력 강화 노력이 함께 갈 때, 국민적 지지를 얻어 통상교섭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

“통상은 안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다. 관세 전쟁은 단순한 관세율 다툼을 넘어, 국가 간 힘의 경제학이 작용하는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한국은 지난 7년의 시행착오와 성과를 거울삼아 주체적 통상 국가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 경쟁력, 다변화된 시장 포트폴리오, 지혜로운 외교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보호무역의 파고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인 만큼, 한국은 민관이 합심한 통상 총력전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철저한 대비와 전략적 대응만이 관세전쟁 시대에서 살아남는 길이며, 그것이 곧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보장하는 길이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을 때, 어떠한 관세 폭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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