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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허버트강을 아는 지인으로부터 춘식이 형(허버트. 강 본명)이 형이 지난해 타계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그 말을 듣고 5년 전 힐튼호텔 경기장에서 허버트강과 두 번째 만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쇠잔한 모습의 허버트. 강은 마치 실어증(失語症)에 걸린 사람처럼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잠시 후 필자가 허버트. 강의 출세작인 시바다. 구니아끼 (일본)를 상대로 6회 강력한 라이트 어퍼컷으로 KO 시킨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 하자 그때 서야 허버트. 강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필자의 손을 잡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래전 필자와 대담에서 그는 홍수환 염동균 고생근 유제두 등 윤필용 수경사 사령관이 창단한 수경사 시절 추억을 공유한 동료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수경사 복싱팀은 수경사 사령관 윤필용 장군이 허버트강을 세계 챔피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허버트. 강의 입대 날짜에 맞춰 창설한 허버트강에 의한 허버트강을 위한 허버트강의 복싱팀이었다.
허버트. 강은 1970년대 초반 해 질 무렵이 되면 그는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영화인들의 거리로 유명한 충무로 주점에 출입했다. 그곳은 당대 최고의 배우인 허장강 박노식 서영춘등 이 모이는 사교 장소였다. 이유는 이곳에 들려 그분들을 상대로 속칭 <삥>을 뜯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허버트. 강은 충무로의 밤안개로 불리었다.
허버트. 강 그가 이곳을 활보(闊步)하며 다닐 수 있었던 까닭은 아버지 강세철과 동거녀인 여배우 도금봉 모두가 유명인이었고 자신도 전도유망한 전직 동양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1926년 평북 운산 태생의 강세철은 1960년 11월20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동앙 J.미들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리지. 베이온을 5회 KO승을 거두고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동양 챔피언에 오른 상징성 있는 복서 원로였다. 한편 허버트. 강은 충무로에서 수금한 돈을 동료 복서 염동균에게 유독 많이 베풀었다.
이런 고마움을 잊지 못한 염동균은 1975년 11월 일본에서 벌인 동양 타이틀 5차방어전(다나까. 후따로)에서 받은 대전료 2백만 원 전액을 허버트강에게 지급 결초보은(結草報恩) 의리를 보여주었다. 허버트. 강은 1949년 8월3일 서울에서 강세철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와 일찍 헤어져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유소년기를 보낸 외롭고 고독한 소년이었다. 13살부터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가 다니는 도장에서 샌드백을 치던 강춘식에게 아버지가 존경하는 미국 민주당 정치인 휴버트 험프리의 이름을 따서 허버트강이란 링네임을 지어준다. 1964년 8월 허버트. 강은 프로 전향을 한다. 그러나 1년 동안 6전을 싸워 2승 4패(1KO패)를 기록한다. 1965년 8월 허버트강은 조준상을 1회 KO로 꺾으면서 11개월 동안 9연승(5KO)을 질주한다. 이 가운데는 1966년 4월 문창수를 10회 KO로 꺾고 한국 J.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1966년 9월 허버트. 강은 그 유명한 김현과 첫 대결을 펼쳐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들은 도합 7차례에 걸쳐 라이벌전을 펼쳐 허버트. 강은 3승3무 1패를 기록한다. 1967년 9월 필리핀에 원정한 허버트강은 3연속 KO승을 기록해 거칠 것이 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탄력을 받은 허버트강은 1968년 9윌 11일 일본에 원정 챔피언 사이또 가쓰오를 2회 묵직한 한방으로 혼절시키면서 동양 페더급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1969년 1월 동경으로 날아가 맞이한 도전자가 훗날 2체급에 걸쳐 3차례나 세계 정상에 오르는 일본의 복싱 영웅 시바다. 구니아끼였다. 당시 25전 23승(16KO)1무 1패를 기록한 시바다는 챔피언 허버트강을 맞이하여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연타를 마치 샌드백 때리듯 난타한다. 이에 허버트강은 거북이처럼 잔뜩 웅크린 자세로 침착하게 반전의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맞이한 6회 허버트. 강의 회심의 라이트 일격을 들어오는 시바다 몸통을 향해 때린다. 타격을 받은 상대는 총 맞은 노루처럼 링 바닥에 푹 고꾸라진다. 결국 시바다에 KO승을 거두고 방어에 성공한 허버트. 강은 그해 한국 권투위원회 선정 최우수복서(MVP)로 선정되었다. 이때 전문가들은 천정부지로 그의 가치가 급상승 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1970년 3월 일본의 지바 노부에 판정패하면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후 1977년 10월 김종호와 벌인 한국 J.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KO패하면서 29세로 은퇴를 할 때까지 통산 66전 39승 (23KO) 9무 18패를 기록하였다. 허버트. 강은 은퇴 후 인쇄 영업 술집 분식집 등을 하였고 아내는 보험회사에 다녔다. 이때 격투기 황제 이효필이 아내에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면서 동료애를 보여주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말년에 강세철은 누이동생 집에 얹혀살았고 허버트. 강도 부인에 의지하며 살았다. 술에 취해 살면서 조강지처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날의 삶도 흡사했고 말년을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이 세상을 떠난 점도 부전자전(父傳子傳)이었다. 하버드. 강의 전언에 의하면 그는 현역 시절 새벽 운동 따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냥 한방이면 그만인데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복싱 철학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복싱계를 떠나서도 이런 마인드로 인생 2막을 살았다. 사각의 링에서는 가끔씩 한방이 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한 사회생활 속에는 한방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들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떨어지는 낙엽처럼 떠나갔다. 다시 한번 한 시대를 풍미한 철권 허버트. 강의 죽음을 애도하며 편안하게 영면하길 바란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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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열전] 동양 페더급 챔피언 허버트강 향년 76세로 타계하다 -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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