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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8일, 법원은 김건희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명태균 여론조사 수수’ 혐의는 무죄, 통일교 금품 수수 일부만 유죄로 인정됐다.
국민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형량이 낮아서가 아니다. “녹취와 정황이 있는데도 무죄가 가능하냐”는 질문, 바로 상식이 무너졌다는 절망 때문이다. 법은 법정 언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납득할 때 비로소 권위를 얻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 납득을 무너뜨렸다. 결국 사람들은 “또 그랬다”는 체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재판부가 여론조사 건을 무죄로 본 이유는 ‘재산상 이득을 단정하기 어렵다’, ‘여론조사가 전속적으로 제공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법리적 설명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법리가 현실의 권력관계와 사회적 상식을 지워버릴 때, 법은 정의가 아니라 기술처럼 보인다. 아무리 정교해도 설득이 빠지면 공허하다.
그래서 사법개혁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안전장치다. 판결문과 양형 사유는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신속히 공개돼야 한다. 유사 사건의 양형 편차는 데이터로 정리해 시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식 검증 장치’를 제도 안에 심어, 법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판결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할 때, 사법은 ‘설명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재판부는 무죄 판단의 핵심 논리를 한 장짜리 요약으로 공개하고, 증거 채택·배척 기준을 표준화해야 한다. 대법원은 유사 사건의 기준을 더 자주, 더 명확히 제시해 하급심의 편차를 줄여야 한다. ‘알아서 믿으라’는 태도는 이미 통하지 않는다. 민심은 물처럼 흐르고, 불신도 예외 없이 번진다.
특검이 징역 15년을 구형했는데 판결은 1년 8개월로 내려앉았다. 이 괴리는 불신의 불쏘시개가 됐다. 수사·기소·재판이 하나의 흐름으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동시에 특검의 구형이 과도했거나 증거 제시가 허술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구형이 현실과 동떨어지면 오히려 법원의 판단을 느슨하다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수사와 기소가 법정에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판결의 신뢰는 애초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특검 역시 국민 앞에서 증거와 논리의 완결성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배심원제가 다시 거론된다. 한국에도 국민참여재판이 있지만,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에 그친다. 비효율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만장일치 배심은 최소한 권력의 논리가 시민의 상식 앞에서 멈추게 만든다. 다름을 인정하되 공동체의 합리성을 지키는 장치다.
배심 확대가 어렵다면, “AI 판결이 더 공정하지 않겠냐”는 절망도 나온다. AI는 눈치를 덜 본다. 하지만 AI도 편견을 학습한다. 답은 ‘AI 판사’가 아니라 ‘AI 감시자’다. 판례, 증거 일관성, 양형 편차를 AI로 공개하고, 법관이 그 차이를 설명하게 만드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재량은 존중하되, 그 이유는 국민 앞에 제출돼야 한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그 보루가 흔들리면 민심은 법을 떠난다. 정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사법이 상식의 언어로 스스로를 설명할 때 신뢰는 다시 자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복하라”는 훈계가 아니라 “설명하겠다”는 낮은 자세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김건희1심 #사법개혁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제 #판결문공개 #양형투명성 #AI법원감시 #법치주의
https://sisaissue.com/View.aspx?No=3958700
[김성민 칼럼] 1년 8개월 판결, 국민은 왜 납득하지 못했나 - 시사의창
2026년 1월 28일, 법원은 김건희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명태균 여론조사 수수’ 혐의는 무죄, 통일교 금품 수수 일부만 유죄로 인정됐다.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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