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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봄의 따뜻함과 함께 새싹이 솟아나는 4월이다. 이번 주 칼럼의 주인공은 한국복싱 <역사상 최초>로 마(魔)의 체급이라 불리는 J. 라이트급에서 정상에 오른 최용수다. 최용수는 1972년 충남 당진태생이다. 이곳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최용수는 1989년 신평고 1학년 때 상경한다. 얼마 후 최용수는 신월동 에 위치한 극동 서부체육관에 입관 한다. 그곳에서 복싱계 명장 김춘석 관장의 세심한 지도를 받은 최용수는 단 한 차례의 아마복싱도 거치지 않고 1990년 11월 곧바로 프로에 전향 1년 동안 8전 6승(4KO) 2패를 기록한다.

특히 1991년 11월 8전 3승3패(1KO)2무를 기록한 반타작 복서 장성관(원진체)에게 2회 52초 만에 KO패 당하면서 프로에 매운맛을 경험한다. 최용수는 6개월 만에 만난 재기전 상대가 4연승(3KO)을 기록한 권창재였다.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권채오의 친동생 권창재는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문성길과 펼친 공개 스파링에서 문성길을 한차례 다운시킨 강타자였다. 이 대결에서 최용수는 접전 끝에 근소한 차의 판정승을 거두고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1993년 3월 안병세(대원 체)를 10회 판정으로 꺾고 국내 챔피언에, 12월 이은식(부산 광명)을 3회 KO로 잡고 동양 타이틀을 순차적으로 석권한다. 특히 최용수가 꺾은 안병세 이은식 두 선수는 아마추어 시절 전국 선수권을 제패한 실력이 검증된 복서들이었다.

이들에 비해 단 한 차례도 아마추어를 거치지 않은 최용수는 섬세한 테크닉은 다소 부족했다. 그리고 발동(發動)도 늦게 걸리는 슬로우 스타터였다. 하지만 그는 투철한 프로 근성을 발판으로 막판 전세를 뒤집는 저력을 보여주면서 연달아 승전보를 울렸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당시 일본을 비롯한 함량 미달의 동남아 선수들을 무더기로 국내로 불러들여 무차별적으로 KO 승을 기록하는 것도 사실 괜찮았다. 하지만 최용수처럼 비록 KO패를 당하면서 성장통을 겪을지라도 국내 정상급 복서들과 각축전을 펼쳐 기량을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 것도 선수 장래를 위해선 바람직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1995년 10월 22일 이역만리 아르헨티나에서 WBA J. 라이트급 타이틀 결정전을 펼치기 위해 동급 2위 최용수는 김춘석 관장과 출국한다. 챔피언 헤르 난데스의 자진 반납으로 인해 홈링의 우고 파스(26세)와 타이틀 결정전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이 대결에서 2차례 다운을 탈취하며 최용수는 10회 KO 승을 거두고 대한민국 47대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페더급과 라이트급 사이에 포진된 J. 라이트급 이 체급은 서강일 김현치 김태호 오영호 최충일(2차례) 문태진 등 국내 복서 6명이 7차례에 걸쳐 줄기차게 정상의 문을 두들겼던 체급이었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문이 열리지 않은 철옹성(鐵瓮城)처럼 단단한 체급이었다. 여기에 신데렐라처럼 출연한 무명의 최용수가 7전 8기를 연출하면서 탈취한 이 타이틀을 3년동안 7차 방어에 걸쳐 성공한다. 하이라이트는 4차방어전 상대인 몽골 국적의 용병 라크바 심이었다. 5전 전승 (4KO)를 기록한 몽골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11연승 (10KO)를 기록한 곤잘레스 (베네주엘라)를 6회 함포 사격으로 침몰시키고 세계랭킹에 진입한 다크호스였다. 또한 그는 1995년 몽골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1995년 서울컵 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으며 파워와 체력을 검증받은 도전자였다.

이 대결에서 챔피언 최용수는 징키스칸의 후예 라크바와 시종일관 팽팽한 타격전을 펼쳤다. 그리고 홈링임에도 불구하고 10회 주심이 경고도 없이 파올을 최용수에게 선언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하지만 김춘석 관장이 지시하는 전략과 전술을 스펀치처럼 잘 흡수하면서 전세를 뒤집기 시작한다. 결국 12회 2ㅡ1 판정승을 거두고 최용수는 4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현장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면서 방어에 성공한 챔피언 최용수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잡초(雜草) 복서답게 최용수는 은퇴할 때까지 모두 10번의 해외 원정경기를 펼쳐 7승 (3KO) 1무2패를 기록했다. 최용수가 기록한 7승은 생존한 국내 복서들 가운데 국내 최다승 기록이다. 그리고 6차례 해외 원정 세계 타이틀전에서도 국내 최다승인 3승 (1무 2패)을 걷어 올렸다. 그 중심에는 지략가 김춘석 관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2권의 자서전을 출판한 김 관장은 승부사 기질이 남다른 트레이너였다.

최용수는 1995년 10월 세계 타이틀 도전 첫 승이 10회 KO로 장식한 아르헨티나(우고 파소) 원정경기였다. 그리고 1996년 1월과 10월에 일본에 원정 야마토 미다니 (일본)와 1차. 3차. 두 차례 방어전에서 모두 판정승을 거두었다. 97년 10월에 벌인 하다께야마(일본)와 벌인 6차방어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98년 9월 하다께야마와 벌인 8차 방어전에서 판정패를 당했다. 그리고 4년 5개월 후 일본으로 이적한 WBC 슈퍼페더급 챔피언 시리몽콜 (태국)의 타이틀에 도전(판정패)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전(前) WBA J. 라이트급 최용수 챔프가 며칠 전 필자에게 한 통의 문자를 보내왔다. 아들 최유찬 군 결혼식이 오는 4월12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열린다는 초대장이었다.

원로 복서 원동희 선배와 함께 복싱계에서 가장 겸손하고 예의 바른 복서로 정평이 난 최용수는 은퇴 후 복싱계를 떠나 체육관을 운영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 지금은 안산시 고잔동 에서 건설 현장 인력사무소 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가 지켜본 인간 최용수는 가슴 따뜻한 남자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노숙자 혹은 걸인을 만나면 즉시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털어 그대로 전달하는 의로운 사나이가 바로 최용수다. 아들 결혼식을 전환점으로 삼아 지난날 복싱에서 펼쳐진 그의 불타는 저력을 사회생활에서 다시 한번 보여주길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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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스포츠칼럼 #최용수챔프 #최용수 #권투 #복싱 #김춘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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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스포츠 칼럼] 생존한 복서 중 해외 원정 최다승을 기록한 WBA J.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

어느덧 봄의 따뜻함과 함께 새싹이 솟아나는 4월이다. 이번 주 칼럼의 주인공은 한국복싱 로 마(魔)의 체급이라 불리는 J. 라이트급에서 정상에 오른 최용수다. 최용수는 1972년 충남 당진태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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