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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8일, 평화 시위는 정치깡패의 습격으로 얼룩졌다…권력은 침묵했고, 시민의 분노는 혁명이 되었다

1960년 4월 18일, 서울 한복판에서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4·18 고려대 의거로 불리는 이날의 시위는 단순한 학내 집회가 아니었다. 부정선거로 권력을 연장한 이승만 정권에 맞서, 고려대학교 학생 수천 명이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정당한 선거, 책임 있는 정부, 그리고 국민의 권리.”
그러나 평화적 외침은 곧 폭력으로 짓밟혔다. 시위를 마치고 귀교하던 학생들을 기다린 것은 조직적으로 동원된 정치깡패들의 습격이었다. 몽둥이와 쇠파이프가 난무했고, 수십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국가 권력은 이 폭력을 방관했다. 아니, 사실상 묵인했다. 공권력은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권력 유지를 위해 폭력을 외주화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민주주의의 요구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장면이었다. 선거를 조작한 권력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비공식 폭력을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은 의도적으로 지워졌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는 명백한 국가 책임의 방기이자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하지만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4월 18일 밤의 피는 곧바로 다음 날의 분노로 이어졌다. 전국으로 번진 시위는 결국 4·19 혁명으로 폭발했다. 학생과 시민이 함께 일으킨 이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끌어냈다. 4·18은 도화선이었다. 침묵을 강요당하던 사회가 스스로 목소리를 되찾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분명하다. 시민의 몸과 목소리로 지켜진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가가 폭력을 방치하거나 방조하는 순간, 그 국가는 이미 시민과의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고려대 학생들의 외침에 가해진 폭력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은 국가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권력은 언제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갖고, 시민의 권리는 쉽게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렇기에 1960년 4월 18일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쟁취되고 갱신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피로 쓰인 하루는 끝났지만, 그날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권력이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오늘의역사 #4월18일 #418의거 #419혁명 #민주주의 #국가폭력 #시민저항 #한국현대사 #시사의창
https://sisaissue.com/View.aspx?No=4046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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