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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금융과 과잉확장, 감독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한 1979년 4월 3일

1979년 4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율산그룹 전 대표 신선호를 업무상 횡령과 외환관리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 무렵 율산은 창업 4년 7개월 만에 14개 계열사와 약 8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 집단으로 급팽창해 있었다.
문제는 성장의 속도보다 훨씬 빨랐던 차입의 규모였다. 대법원 판결문에 인용된 원심 판단을 보면, 1978년 9월 30일 기준 율산 계열기업의 전 거래은행 총여신액은 1,620억4,200만 원, 제공 담보는 425억2,000만 원에 그쳤다. 차액만 1,195억2,200만 원에 달해 이미 정상적인 원리금 회수가 어려운 상태로 적시됐다. 서울신탁은행 주거래 여신만도 586억6,800만 원이었다.
율산의 붕괴는 한 기업인의 무리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수출기업에 행정·재정·세제 특혜를 집중했고, 수출금융 금리는 1979년 기준 연 9.0%로 일반은행 대출금리 18.7%의 절반 수준이었다. 종합무역상사에는 원자재 수입권 우선, 국제입찰 지원, 신용장만으로 가능한 즉시 금융지원이 주어졌고, 율산실업도 1978년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됐다. 같은 연구는 종합무역상사 지정을 노린 무리한 인수합병이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졌고, 그 부작용의 상징적 사례가 율산이었다고 짚는다.
이 사건의 역사적 의의는 분명하다. 압축성장의 시대가 만들어낸 ‘청년 재벌 신화’가 얼마나 취약한 금융 구조 위에 세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 첫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이다. 국가가 키운 성장 모델이 감시와 통제를 잃는 순간, 특혜는 곧 위험으로 바뀌고 그 비용은 기업 내부가 아니라 금융권과 사회 전체로 번져간다. 율산 사건은 한국 경제가 이후에도 반복해서 마주한 과잉차입, 외형 부풀리기, 정책금융의 정치성이라는 오래된 병목을 일찍 드러낸 경고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다시 이 사건을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놓여 있다. 성장의 수치가 정의를 대체할 수 없고, 화려한 외형이 건전한 구조를 보증하지도 않는다. 시장은 신화로 유지되지 않으며, 민주적 통제와 공적 책임이 빠진 성장 전략은 끝내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린다. 1979년 4월 3일은 한 재벌 총수의 구속일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가 ‘성장 만능’의 대가를 배워야 했던 날로 남았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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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isaissue.com/View.aspx?No=4028418
[김성민의 역사추적] 율산 신화가 무너진 날, 신선호 구속이 드러낸 한국형 성장의 균열 - 시사의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79년 4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율산그룹 전 대표 신선호를 업무상 횡령과 외환관리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 무렵 율산은 창업 4년 7개월 만에 14개 계열사와 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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