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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23일 국내 국민대회 이름으로 임시정부 선포문이 발표됐다. 총칼의 식민통치 아래서도 민중은 군주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문을 먼저 열었다

1919년 4월 23일은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된 날로 기억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내에서 24명으로 구성된 국민대회 13도 대표자 명의로 국민대회 취지서와 임시정부 선포문이 발표됐다고 적고 있다. 일제치하 서울 한복판에서 ‘한성정부’를 수립 선포한 것이다.
이 사건의 무게는 단순히 “임시정부 하나가 더 있었다”는 데 있지 않다. 한성정부는 서울이라는 식민권력의 심장부에서, 그것도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 ‘나라의 정통은 민중에게 있다’는 뜻을 정치 형태로 밀어 올린 선언이었다. 훗날 통합 임시정부는 이 한성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했고, 절차적 정당성과 국내 대표성 면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은 선언이었다.
더 주목할 대목은 한성정부가 품은 사상의 방향이다. 1919년의 임시정부 계열은 군주제 복귀가 아니라 민주공화제를 향했고, 평등, 자유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다시 말해 4월 23일의 선포는 독립만 외친 사건이 아니라,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지까지 미리 밝힌 정치적 선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민중은 이미 백성이 아니라 주권자라는 감각을 역사 앞에 제출한 셈이다.
이 장면을 오늘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자주 1948년을 국가의 출발로만 좁혀 보려는 시선과 맞닥뜨리지만, 제헌국회와 이승만 역시 1919년 4월 23일 서울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를 계승 대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뿌리가 식민권력과 타협한 질서가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과 민주공화의 원리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4월 23일 한성정부 선포는 엘리트 몇 사람의 제도 설계가 아니라, 3·1운동으로 거리에서 터져 나온 민중의 요구가 정치 체제로 번역된 순간이다. 국가의 정당성은 총칼이 아니라 시민의 동의에서 나온다는 상식, 권력은 신분이 아니라 대표성 위에 서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독립은 곧 평등한 공화국이어야 한다는 방향이 이때 이미 드러났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자꾸 뒤로 밀릴 때마다, 우리는 1919년 4월 23일을 다시 읽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애초부터 권력자의 나라가 아니라 시민의 나라로 구상됐기 때문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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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isaissue.com/View.aspx?No=4052793
[김성민의 역사추적] 서울 한복판에 공화국을 선포한 날…4월 23일 한성정부, 나라의 주인은 백성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19년 4월 23일은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된 날로 기억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내에서 24명으로 구성된 국민대회 13도 대표자 명의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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