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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24일 오사카·고베 일대에서 벌어진 민족교육 수호 투쟁, 학교 폐쇄령에 맞선 재일조선인의 집단 저항



1948년 4월 24일 일본 오사카와 고베 등 한신 지역에서는 재일조선인들이 조선학교 폐쇄 조치에 맞서 집단 시위와 항의행동에 나섰다. 이른바 4·24 한신교육투쟁은 해방 이후 재일동포 사회가 우리말과 우리글,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인 대표적 저항으로 기록된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사회는 각지에 국어강습소와 조선학교를 세우며 민족교육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일본 당국과 점령 당국은 이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일본 교육제도 편입과 일본어 중심 교육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조선학교 폐쇄 조치가 잇따랐고, 재일조선인 사회는 이를 민족 정체성과 교육권을 겨냥한 탄압으로 받아들였다.
4월 24일 한신 지역에서 터져 나온 저항은 단순한 학교 문제를 넘어선 사건이었다. 학교를 지킨다는 것은 언어를 지키는 일이었고, 언어를 지킨다는 것은 공동체의 기억과 존엄을 지키는 일이었다. 재일조선인들이 거리로 나선 배경에는 해방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차별과 배제, 그리고 동화 압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투쟁은 대규모 군중 시위로 번졌고, 강경 진압과 대량 검속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연행됐고, 적지 않은 희생도 뒤따랐다. 교육의 권리를 요구한 시민들을 치안의 대상으로 몰아붙인 대응은 국가권력이 소수자의 권리를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4·24 한신교육투쟁의 역사적 의미는 분명하다. 이 사건은 재일조선인 사회가 단지 생존을 넘어 자기 언어와 문화를 지킬 권리,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가르칠 권리를 요구한 집단적 실천이었다. 동시에 해방 이후 동아시아가 식민주의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했다.
진보적 시각에서 이 사건은 더욱 중요하다. 교육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허락하는 혜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권리이며, 소수자의 언어와 문화 역시 존중받아야 할 공적 가치다. 그럼에도 권력은 언제나 약자의 권리를 행정과 질서의 이름으로 억누르려 했다. 4·24 한신교육투쟁은 바로 그 폭력에 맞서 교육권과 존엄을 지켜낸 역사로 읽혀야 한다.
오늘 이 사건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별은 종종 노골적인 폭력이 아니라 제도와 행정의 얼굴로 다가온다. 1948년 4월 24일 한신 지역의 거리에서 재일동포들이 지키려 한 것은 학교 몇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과 글, 기억과 이름,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였다. 4·24 한신교육투쟁은 재일동포사에 머무는 사건이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와 교육의 공공성을 묻는 동아시아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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