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MALL

 

4·19혁명의 함성이 이승만 하야로 이어진 ‘승리의 화요일’

1960년 4월 26일, 대한민국 현대사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장기집권과 부정선거, 국가폭력에 맞선 학생과 시민의 함성이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으로 이어졌다. 4월 19일의 피가 4월 26일의 정치적 결말을 만들어낸 셈이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 4월 11일 김주열 학생 시신 발견, 4월 18일 고려대생 시위, 4월 19일 전국 확산, 4월 25일 교수단 시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이 4·19혁명의 주요 흐름이다.

그날의 하야는 어느 날 갑자기 내려진 통치자의 결단이 아니었다. 3·15 부정선거는 자유당 정권의 권력 사유화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4월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헌법 유린, 부정부패, 부정선거에 항거해 1960년 2월 28일부터 4월 26일까지 전국에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 시위에 시민들이 결합하면서 혁명으로 발전했고, 경찰의 유혈진압은 국민적 분노를 더욱 키웠다.

4월 19일, 거리로 나온 학생과 시민들은 부정선거 무효와 독재 종식을 외쳤다. 그러나 권력은 국민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 총구로 응답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졌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민의 희생은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무너뜨렸다. 4월 19일 서울 각 대학생 시위가 경찰과 대치 속 유혈사태로 이어졌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됐다.

결정적 장면은 4월 25일 교수단 시위였다. 전국 대학 교수들이 거리로 나서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학생들의 피 위에 지식인 사회가 응답한 것이다. 거리의 외침은 더 이상 일부 청년의 저항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던진 정치적 최후통첩으로 변했다. 4월 25일 교수단 300여 명이 시위에 나섰고,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1960년 4월 26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다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됐다. 이날 시위는 이승만 독재 정치와 부정선거, 무차별 발포에 대한 퇴진 요구로 이 시위에 굴복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권이 붕괴됐다. 그래서 이날은 4월 19일 ‘피의 화요일’과 대비해 ‘승리의 화요일’로 불린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에는 “국민이 원하면 물러나겠다”는 취지와 함께 재선거, 이기붕의 공직 사퇴, 내각책임제 개헌 가능성 등이 담겼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 성명을 통치자의 선의가 아니라 시민 저항이 만들어낸 결과로 기억한다.

1960년 4월 27일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서를 제출했고, 5월 3일 국회가 대통령 사임서 처리 안건을 다뤘다. 이후 그는 5월 29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하와이로 떠났다.

4월 26일의 의미는 단순한 정권 퇴진에 머물지 않는다. 이 날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헌정 원리가 거리에서 확인된 날이다. 선거가 조작되고, 언론이 억눌리고, 공권력이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때 민주주의는 제도 안에서만 지켜지지 않는다. 때로는 거리의 시민, 교실의 학생, 강단의 교수, 침묵을 거부한 평범한 국민이 헌법의 마지막 보루가 된다.

그러나 4·19혁명의 완성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혁명은 독재자를 물러나게 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후에도 군사쿠데타와 권위주의, 국가폭력, 선거 왜곡의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승리로 완성되는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감시하고 복원해야 할 공적 질서다.

오늘 4월 26일을 다시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이 만든 역사는 권력자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언론에는 감시의 책무를 요구하며, 사회에는 기억의 윤리를 요구한다. 1960년 봄의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교과서가 아니라 피와 발걸음으로 증명했다. 그들이 남긴 질문은 지금도 선명하다.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는 시민 앞에 얼마나 정직한가. 언론은 진실 앞에서 얼마나 물러서지 않는가.

4월 26일은 대통령이 물러난 날이기 전에, 시민이 주권자로 일어선 날이다. 이 하루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다시 권력의 사유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며, 다음 세대에게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치는 일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김성민의역사추적 #4월26일 #419혁명 #이승만하야 #승리의화요일 #민주주의 #대한민국현대사 #시사의창

https://sisaissue.com/View.aspx?No=4056280

 

[김성민의 역사추적] 4월 26일, 시민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날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60년 4월 26일, 대한민국 현대사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장기집권과 부정선거, 국가폭력에 맞선 학생과 시민의 함성이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으로 이어

sisaissue.com

 

LIST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