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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민족일보 강제종간, 언론 자유를 짓밟은 군사권력의 첫 칼날

1961년 5월 19일, 진보 성향 일간지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강제 종간됐다. 5·16 군사정변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이었다. 창간 3개월 남짓한 신문 한 부가 군사권력의 명령 앞에 사라졌고, 그 뒤에는 한국 현대 언론사에서 가장 참혹한 필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13일 창간됐다. 4·19혁명 이후 분출한 정치적 자유와 혁신계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으려 했다. 이 신문은 민족의 진로 제시, 부정부패 고발, 노동대중 권익 옹호, 조국 통일의 호소를 주요 지향으로 삼았다. 당시 남북협상, 남북교류, 중립화통일, 민족자주통일 논의도 적극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이러한 지면은 불온의 증거로 낙인찍혔다. 5·16 이후 군부는 언론 사전검열 조치를 발표했고, 5월 18일 조용수 사장 등 『민족일보』 관계자들을 체포했다. 다음 날인 5월 19일, 『민족일보』는 폐간 조치됐다. 신문을 닫게 한 것은 단순한 행정 처분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국가폭력의 출발점이었다.
발행인 조용수는 이후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소급 적용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혁명재판소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1961년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됐다. 신문 한 부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한 언론인의 생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빼앗긴 셈이다.
역사는 뒤늦게나마 이 사건을 바로잡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6년 조용수에 대한 사형 판결을 위법한 것으로 보고 재심 등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2008년 1월 16일 서울중앙지법은 조용수에게 47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민족일보 강제종간 사건은 언론의 자유가 헌법 조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권력이 불편한 질문을 ‘안보’와 ‘질서’의 이름으로 봉쇄할 때,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언론의 숨통에서부터 막힌다. 색깔론은 진실을 가리는 가장 오래된 정치 기술이었고, 사법은 때로 권력의 칼집이 되기도 했다.
오늘 우리가 5월 19일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언론은 권력의 홍보지가 아니라 시민의 감시자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권력이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민주공화국의 최소 조건이다.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언론 탄압의 과거사를 교육하고, 공권력의 위법 행위에 대한 기록 공개와 사법 책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민족일보』의 종간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언론 자유의 빚으로 남았다. 5월 19일은 묻는다. 우리는 권력 앞에서 펜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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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isaissue.com/View.aspx?No=4083737
[김성민의 역사추적] 5월 19일, 권력은 왜 신문을 두려워했나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61년 5월 19일, 진보 성향 일간지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강제 종간됐다. 5·16 군사정변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이었다. 창간 3개월 남짓한 신문 한 부가 군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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