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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이슬람교 중앙성원 준공과 다종교 사회의 문이 열린 순간

1976년 5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이슬람교 중앙성원 준공식이 열렸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이슬람 예배 공간이 문을 연 날이었다. 이날 준공된 중앙성원은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한국 종교 지형의 외연이 넓어졌음을 알린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당시 한국 사회는 불교와 기독교, 유교 문화가 공고한 기반을 이루고 있었지만, 이슬람은 여전히 낯선 신앙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 서울 한남동에 중앙성원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새로운 종교와 문화의 존재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됐다.
한국 이슬람 공동체의 형성은 한국전쟁 시기 터키군과의 접촉을 계기로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국내 무슬림 공동체는 조직을 갖추고 신앙생활의 기반을 마련해 왔으며, 그 결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1976년 5월 21일 준공된 한남동 중앙성원이었다. 이 성원은 국내 무슬림들에게 예배와 교육, 교류의 중심지가 됐고, 해외 이슬람권과 한국 사회를 연결하는 창구 역할도 맡았다.
이 사건의 의미는 건축물 하나가 세워졌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종교의 자유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실천하기 시작한 장면이었고, 국제사회와의 문화적 접점을 한층 확장한 계기이기도 했다. 1970년대 산업화와 대외 교류 확대 속에서 한국은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다양성까지 마주하기 시작했는데, 한남동 중앙성원의 준공은 그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지였다.
서울 한남동 중앙성원은 이후 오랜 세월 한국 이슬람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슬림에게는 신앙의 터전이었고, 비무슬림에게는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 현장이었다.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경계선을 긋기보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한 사회 안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오늘날 한국은 이주민과 유학생,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다문화와 공존이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시대에, 1976년 5월 21일의 한남동 중앙성원 준공은 다시 돌아볼 가치가 크다. 반세기 전 한국 사회가 내디딘 작은 한 걸음이 오늘의 다양성과 포용의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역사는 늘 거대한 정치 사건이나 전쟁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때로는 한 도시의 언덕에 세워진 한 채의 성원이 사회의 성격을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넓히며, 공동체의 방향을 조용히 바꿔 놓는다. 1976년 5월 21일 한남동에서 열린 중앙성원 준공식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날 한국은 낯선 종교를 경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살아갈 이웃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첫 장면을 써 내려갔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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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추적] 5월 21일, 서울 한남동에 한국 첫 이슬람 성원이 세워졌다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76년 5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이슬람교 중앙성원 준공식이 열렸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이슬람 예배 공간이 문을 연 날이었다. 이날 준공된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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