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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의 마지막 철권, 헌법 개정 논의까지 처벌한 국가권력의 폭주

1975년 5월 13일, 박정희 정권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명분으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선포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시행된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 유포, 사실 왜곡 전파, 유신헌법 비판, 헌법 개정·폐지 주장, 학생들의 집회·시위와 정치 관여까지 금지했다. 국가가 국민의 입과 생각, 토론과 청원까지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밀어 넣은 사건이었다.
긴급조치 9호의 핵심은 단순한 치안 유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비판을 범죄로 만들고, 헌법을 바꾸자는 주장마저 체제 부정으로 몰아간 정치적 봉쇄였다. 긴급조치 9호는 신문·방송·통신·문서·도서·음반 등 다양한 표현수단을 통해 유신헌법을 비판하거나 개정·폐지를 주장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심지어 그 내용을 보도하거나 전파하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처벌 조항도 가혹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도 병과될 수 있었다. 미수와 예비·음모까지 처벌 대상이 됐으며,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했다. 법치의 외피를 두른 국가폭력이었다.
이 조치는 유신체제의 본질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여야 하지만, 유신헌법 아래 긴급조치는 정권을 보호하는 방패로 변질됐다. 유신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정 전반의 국가긴급권은 기한 제한 없이 국민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사법심사에서도 제외된 독재적 권력의 악법으로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긴급조치 9호는 1979년 12월 7일 해제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수많은 시민, 학생,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감시와 체포, 재판과 투옥의 공포 속으로 밀려났다.
역사의 평가는 늦었지만 분명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가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기 전부터 위헌·무효였다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긴급조치 9호 발령 이후 4년여 동안 1,000여 명이 기소되고 900명 이상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밝히며, 2013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위헌·무효를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1975년 5월 13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민주주의의 파괴는 언제나 총칼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법률의 이름으로, 질서의 언어로, 안보의 수사로 다가온다. 그러나 국민이 헌법을 말할 자유, 권력을 비판할 자유, 더 나은 체제를 요구할 자유를 빼앗긴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긴급조치 9호는 과거의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권력에도 묻는 경고장이다. 국가가 시민의 목소리를 막을 때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반대로 시민이 침묵을 거부할 때 역사는 다시 전진한다. 1975년 5월 13일, 그날의 긴급조치가 남긴 교훈은 단 하나다. 권력은 헌법 위에 설 수 없고, 어떤 명분도 국민의 자유를 압류할 수 없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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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추적] 1975년 5월 13일, 말할 권리를 가둔 긴급조치 9호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75년 5월 13일, 박정희 정권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명분으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선포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시행된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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