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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직격이 6월항쟁의 불씨로 번진 연세대 정문 앞 그날

1987년 6월 9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SY-44 직격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한 청년이 쓰러졌다. 이름은 이한열.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다음 날 열릴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를 앞두고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그날의 피격은 우발적 충돌이라는 말로 덮을 수 없는 국가폭력의 장면이었다. 당시 일부 전경들이 최루탄을 시위대를 향해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고, 이한열의 피격도 그 사례였다. 최루탄은 군중 해산 장비였지만, 직격으로 발사되는 순간 치명적 흉기가 됐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학생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간 쇳덩이는 권위주의 정권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한열은 196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동아리 ‘만화사랑’을 만들어 활동했고, 1987년 6월 9일 집회 도중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아 7월 5일 숨졌다. 한 개인의 삶은 짧았으나, 그가 남긴 역사적 파장은 결코 짧지 않았다.
피격 직후 이한열을 부축한 사람은 같은 대학 도서관학과 학생 이종창이었다. 피를 흘린 이한열을 부축한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전국에 퍼졌다. 그 사진은 1987년 한국 사회의 양심을 흔든 결정적 이미지가 됐다. 독재에 대한 분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조작에 대한 격앙,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계기였다.
이한열의 피격은 6월항쟁의 전야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하루 뒤인 6월 10일,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의 외침은 대학 담장을 넘어 회사와 시장, 성당과 거리로 번졌다. 6월의 거리는 더 이상 학생들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함께 만든 민주주의의 광장이었다.
이한열은 27일간 사경을 헤매다 1987년 7월 5일 새벽 2시 5분 뇌손상으로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고, 7월 9일 ‘애국학생 故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이 거행됐다. 그의 죽음은 장례 행렬을 통해 다시 한 번 거대한 시민 저항으로 확장됐다.
1987년 6월 9일을 다시 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피 흘린 청년들, 침묵을 거부한 시민들, 권력의 폭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양심들이 밀어 올린 역사였다. 이한열의 이름은 한 사람의 희생을 넘어, 국가폭력 앞에서 시민의 존엄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표지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권력은 언제든 오만해질 수 있고, 제도는 언제든 시민의 감시를 벗어나려 한다. 그래서 1987년 6월 9일의 기억은 과거형으로 닫히지 않는다. 이한열이 쓰러진 그 자리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선을 그었다. 그 선을 지키는 일이 오늘을 사는 시민과 언론의 책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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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isaissue.com/View.aspx?No=4105209
[김성민의 역사추적] 1987년 6월 9일, 이한열이 쓰러진 날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87년 6월 9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SY-44 직격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한 청년이 쓰러졌다. 이름은 이한열.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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