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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국민대회를 전국 항쟁으로 설계한 시민 저항의 하루

1987년 6월 5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6·10국민대회 행동요강’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단순한 집회 안내문이 아니었다. 군부권력이 강요한 호헌 체제에 맞서 시민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저항할 것인지를 제시한 민주주의의 실행계획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 이후 격렬한 정치적 긴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시민사회와 야권, 재야, 종교계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그 은폐·조작 의혹은 국민적 분노에 불을 붙였고,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해 전국 발기인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민주대연합의 구심으로 자리 잡았다.
6월 5일 발표된 행동요강의 핵심은 분명했다. 6월 10일 오전부터 각 부문과 단체별로 ‘고문살인 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열고, 오후 6시 서울 성공회대성당을 중심으로 전국적 행동에 나서자는 내용이었다. 이는 산발적 분노를 조직적 항쟁으로 바꾸는 결정적 설계도였다.
그날의 행동요강은 시민 저항의 방식을 세밀하게 구성했다. 애국가 제창, 차량 경적, 종교시설 타종, 묵념, 소등 같은 일상의 행위들이 정치적 언어로 바뀌었다. 거리의 함성만이 아니라 집 안의 불빛, 자동차의 경적,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까지 독재에 맞서는 시민의 신호가 됐다.
국본의 전략은 폭력적 충돌을 넘어서는 대중적 시민불복종이었다. 이는 정권의 진압 논리를 무력화하고,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을 넘어 직장인, 종교인, 시민 대중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6월 10일 이후 항쟁은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번졌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는 선언을 내놓게 됐다.
1987년 6월 5일은 피가 터진 날도, 거대한 군중이 광장을 메운 날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은 항쟁이 ‘계획’을 얻은 날이었다. 민주주의는 감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분노를 행동으로, 행동을 연대로, 연대를 제도 변화로 밀어 올리는 치밀한 조직과 용기가 필요하다.
39년이 흐른 오늘, 6월 5일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민주주의는 선거일에만 작동하는 장치인가, 아니면 시민의 일상 속에서 매일 갱신되어야 할 공적 약속인가. 1987년의 행동요강은 그 답을 이미 남겼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선물한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자기 삶의 자리에서 끝내 밀어 올린 역사였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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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추적] 1987년 6월 5일, 민주주의는 행동요강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1987년 6월 5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6·10국민대회 행동요강’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단순한 집회 안내문이 아니었다. 군부권력이 강요한 호헌 체제에 맞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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