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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도착한 자유, 평등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1865년 6월 19일, 미국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연방군 고든 그레인저 장군이 도착했다. 그는 ‘일반명령 제3호’를 통해 텍사스의 노예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공표했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이 1863년 1월 1일 발효된 지 2년 6개월 가까이 지난 뒤였다. 자유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권력이 외면하고, 지역 사회가 저항하고, 제도가 늦게 움직이는 동안 인간의 존엄은 긴 시간 유예돼 있었다.

이날은 훗날 ‘준틴스’로 불렸다. 6월을 뜻하는 June과 19일을 뜻하는 nineteenth가 결합한 말이다. 준틴스는 단순한 해방 기념일이 아니다. 법률 문장 속 자유와 실제 삶의 자유 사이에 얼마나 깊은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언이다. 텍사스의 흑인들은 노예제 폐지 소식을 늦게 전해 들었고, 그 뒤에도 차별과 폭력, 빈곤과 배제의 질서와 싸워야 했다.

준틴스의 의미는 “해방됐다”는 선언보다 “왜 그토록 늦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권리가 종이에 적혔다고 해서 곧바로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법이 인간을 구원하려면 집행이 있어야 하고, 제도가 사람의 삶에 도달해야 하며, 사회가 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준틴스가 오늘까지 강한 울림을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2021년 6월 17일 준틴스를 연방 공휴일로 제정했다. 그러나 국가가 뒤늦게 기념일을 만든다고 해서 과거의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기념은 출발일 뿐이다. 역사는 약자의 고통을 장식품으로 소비할 때가 아니라, 그 고통을 만든 구조를 해체할 때 비로소 진전한다.

1865년 6월 19일은 우리에게도 낯선 역사가 아니다. 식민지와 분단, 독재와 차별의 시간을 지나온 한국 사회 역시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수없이 경험했다. 자유는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구현되는 것이며, 평등은 선언문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증명돼야 한다. 준틴스는 그래서 미국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모든 민주주의의 거울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인간의 존엄은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권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권리가 누구에게는 즉시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늦게 도착한다면 그 사회는 아직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 6월 19일의 역사는 자유의 축제가 아니라, 지연된 정의를 끝내 현실로 만들라는 시대의 명령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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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isaissue.com/View.aspx?No=4118904

 

[김성민의 역사 추적] 1865년 6월 19일, 준틴스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865년 6월 19일, 미국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연방군 고든 그레인저 장군이 도착했다. 그는 ‘일반명령 제3호’를 통해 텍사스의 노예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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