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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전후에서 국내에서 개최되는 복싱 경기장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주인공은 1955년 마산 출신으로 프로복싱 10대 세계 챔피언을 지낸 김환진은 이다. 김환진이 태어난 경남 마산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歌曲) <가고파>의 배경이 된 도시다.

국민 누구나 애창하고 즐겨듣던 가고파는 이 고장 출신 노산 이은상이 발표한 작품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가고파는 노산 선생이 유소년 시절 바라본 아름다운 마산의 앞 바다의 풍경을 담은 곡이다. 김환진은 이곳 마산에서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당돌하게 상경 한다. 일찍 출가한 이유에 대해 그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꿈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본명 김천일을 버리고 홍수환의 환 남진의 진을 혼합하여 김환진(金煥珍)으로 개명한다.

김환진은 영화배우 학원을 5개 월간 다니면서 구봉서 남보원의 흉내를 내면서 코메디언이 될 기량을 닦았다. 그러던 1974년 어느날 노량진 인근에서 용초 체육관이 시야에 포착되자 과감하게 복싱으로 전환한다. 용초 체육관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동양 챔피언 김현치가 설립한 체육관이었다.

당시 관장 김현치는 김진길 트레이너와 함께 여러 차례 국제전을 치루 면서 세계 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해 훈련에 몰입하고 있었고 전반적인 선수 지도는 전국체전 메달리스트 김춘석 사범이 총괄하여 담당하였다. 그곳에서 25살의 김춘석 사범의 미다스손((Midas touch)을 거쳐 김환진을 비롯 김응식 서성인 이상봉 오민근 황준석 이승순 박종팔 최문진 김득구 등 미래의 챔피언들이 대거 탄생한다. 그해 서울 신인대회에서 3등을 차지한 김환진은 전국 무대를 노렸다. 하지만 국가대표 한창덕의 견고한 벽에 막혀 메달권에서 탈락한다.

1977년 6월 22살의 김환진은 프로에 대뷔한다. 그리고 파죽의 4연승(1무 포함)을 질주한다. 그 가운데 훗날 동양의 진주라 불린 IBF J. 페더급 챔피언 이승훈을 6회 판정으로 꺾은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김환진이 복서로써 두각을 나타낸 경기는 1978년 8월 일본에 원정 WBC J.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나까지마. 시게오를 10회 판정으로 잡고 세계랭킹에 진입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1979년 2월 국가대표 출신 김치복 과 10회 무승부를 기록 녹록지 않은 실력을 과시한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파죽의 10연승(4KO) 가도를 질주 세계 1위에 오르면서 WBA J. 플라이급 챔피언 구시껜. 요꼬가 보유한 타이틀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던 1980년 10월 구시껜이 플로레스를 상대로 13차 방어에 힘겹게 성공한다. 하지만 구시껜 의 다음 방어전 상대인 플로레스와 재대결서 12회 KO로 타이틀을 상실하면서 비로소 김환진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1981년 7월 멕시코의 21전 15승(4KO) 6패를 기록한 챔피언 30살의 플로레스의 1차방어전 상대로 김환진이 내정되어 대구에서 WBA J. 플라이급 챔피언 플로레스와 15회 일전을 갖는다. 이 경기에서 17승(6KO)2무를 기록한 26살의 김환진은 12회까지는 멕시코의 작은 들소 플로레스에 근소하게 점수를 앞선 상태에서 운명의 13회를 맞이한다.

김환진은 13회 챔피언 플로레스의 안면에 불꽃처럼 터지는 소나기 펀치를 날린다. 이때 주심이 김환진의 손을 들어 올리면서 한여름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TKO승을 거둔다. 147Cm로 최단신 세계 챔피언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보라싱 (태국)에 이은 역대 챔피언중 2번째로 키가 작은 챔피언(151.7Cm)으로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사실 김환진은 김태식처럼 묵직한 펀치력도 부족했고 박찬희처럼 하이테크한 기술도 부족했다. 하지만 지능지수 140 아마바둑 2단의 전형적인 클레버(Clever) 복서 김환진은 날카롭고 정교한 두뇌 플레이를 적절하게 발휘 정상에 올랐다.

김환진은 1981년 7월 알폰소 로페즈 (파나마)와 1차 방어전을 벌인다. 알폰소 로페즈는 구티. 에스파다스에게 13회 KO패를 당하면서 WBA 플라이급 타이틀을 상실한 전직 챔피언이었다. 이 경기에서 김환진은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1차 방어에 성공한다. 1981년 11월 13일 신부 유유정 양과 김환진이 영동 종합전시장에서 화촉을 밝혔다. 서양에서 금기로 되어있는 금요일과 13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유정 양을 처음 만났던 날도 79년 10월13일 세계 챔피언 플로레스를 꺾은 것도 13회 KO 그래서 13일은 그에게 행운의 날이었다.

그래서 새로 입주할 신혼집 APT도 1003호에 들어간 김환진의 할머니 제삿날도 13일이었다. 이날 결혼식 사회는 뽀빠이 이상용이 담당하였고 주례는 KBC(한국 권투위원회) 양정규 회장이 맡았다. 1981년 12월 김환진은 2차방어전에서 일본에 원정 도카시키와 대결에서 15회 판정패 5개월 만에 벨트를 풀었다. 이 경기에서 김환진은 시종일관 도까시키의 페이스에 말려 완패를 당했다. 김환진이 유일하게 리드한 라운드가 아이러니하게도 행운의 13회전이었다. 또한 3명의 심판중 미국의 하세트 부심은 149ㅡ 136로 도전자 우세로 채점 점수 차가 무려 13점 차가 날 정도로 김환진은 일방적인 난타를 당했다. 김환진은 13개월이 지난 1982년 1월 도카시키와 역시 원정경기로 재대결을 펼친다. 이 대결에서 역시 1차전 때처럼 도카시키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하고 완패를 당하면서 프로통산 26전 22승(8KO)2무 2패를 남기고 은퇴를 선언한다. 유독 13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은 작은 타잔 김환진 챔프는 은퇴후 그가 소망하는 대로 단역 배우와 코메디언으로 활동하였다.

언제가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김환진 챔프에게 근황을 묻자. 강남에 있는 여동생 건물에서 파동에너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태권도 2단 춤과 노래 등 가무(歌舞)에도 뛰어난 김환진 챔프는 대한민국 복싱계 최고의 팔방미인이었다. 고희를(古稀) 넘긴 김환진 챔프의 무궁한 건승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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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열전] 대한민국 복싱계 최고의 팔방미인 세계 챔피언 김환진 - 시사의창

90년대를 전후에서 국내에서 개최되는 복싱 경기장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주인공은 1955년 마산 출신으로 프로복싱 10대 세계 챔피언을 지낸 김환진은 이다. 김환진이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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