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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땅을 지켜낸 시민의 힘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맞서 자발적으로 결집한 민중
짧은 활동에도 침탈 계획을 철회시키며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입증하다

1904년 7월 13일, 서울 종로 백목전에는 나라의 땅을 지키려는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송수만·원세성·송인섭·심상진·양한묵 등을 중심으로 ‘보안회’를 창립했다.

보안회는 거창한 권력을 가진 조직이 아니었다. 군대도, 막대한 자금도 없었다. 그러나 침략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시민의식과 나라의 재산을 외세에 넘겨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다.

‘황무지 개간’으로 포장된 국토 침탈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대한제국을 군사적으로 장악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2월에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한일의정서를 체결해 내정간섭과 군용지 수용의 근거를 마련했다.

뒤이어 일본은 전직 대장성 관료 나가모리 도키치로를 앞세워 대한제국의 황무지를 장기간 개간하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

‘사용하지 않는 땅을 개발해 주겠다’는 것이 일본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요구한 황무지는 단순한 불모지가 아니었다. 산림과 하천, 연못, 들판을 비롯한 광범위한 국토가 대상이었다. 이를 허용하면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 농민의 생존 기반이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개발이라는 언어로 침탈을 은폐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을 장악한 뒤 정치적 지배를 완성하려는 전형적인 식민지 확장 전략이었다.

종로에서 타오른 저항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의 압박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자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독립협회 계열의 개화지식인과 상인, 기독교인, 보부상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보안회에 참여했다. 정치적 성향과 신분은 달랐지만 나라의 땅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만큼은 같았다.

보안회는 종로에서 연일 집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알렸다. 일본과의 협상을 담당한 대한제국 관리들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각국 공사관에 서한을 보내 국제사회에도 일본의 침략성을 호소했다.

일본 경찰과 헌병은 집회를 방해하고 관계자들을 연행했다. 그러나 탄압은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보안회의 투쟁은 서울을 넘어 신분과 계층을 초월한 자발적, 전국적인 국권수호운동으로 확산했다. 

시민의 압력이 정부를 움직이다

거세지는 여론을 외면할 수 없었던 대한제국 정부는 7월 23일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거절한다는 긴급 고시를 전국에 발표했다.

결국 일본은 같은 해 8월 개간권 요구를 철회했다. 보안회가 창립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거둔 성과였다. 총칼을 앞세운 제국주의에 시민의 조직된 여론과 행동이 승리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보안회의 활동은 1898년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이후 가장 광범위하게 전개된 민중 구국운동으로 평가된다. 보안회의 투쟁으로 일본은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할 때까지 황무지 개척권 문제를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차례의 승리가 침략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다. 일본은 이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토지 수탈을 제도화했고, 수많은 농민을 삶의 터전에서 내몰았다. 보안회의 승리는 소중했지만 국권을 지켜낼 제도와 국가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한계도 남겼다.

국토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보안회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의 자산을 특정 기업이나 외부 자본에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시민의 삶과 직결된 토지·물·산림·에너지 같은 공공자원이 충분한 검증 없이 거래되고 있지는 않은가.

국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국민의 삶이 이어지는 터전이며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공동의 자산이다. 개발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손실은 누가 떠안는지 반드시 물어야 한다.

1904년의 시민들은 국가가 주저할 때 광장으로 나왔다. 침탈을 개발로 포장한 권력의 언어를 간파했고, 침묵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정부의 결정을 바꿨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선물하는 제도가 아니다. 시민이 감시하고 질문하며 행동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보안회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황무지 개간권을 막아낸 결과만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은 권력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사실을 역사에 새긴 데 있다.

122년 전 오늘, 종로에 모인 100여 명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라의 땅은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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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04년 7월 13일, 보안회 창립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04년 7월 13일, 서울 종로 백목전에는 나라의 땅을 지키려는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송수만·원세성·송인섭·심상진·양한묵 등을 중심으로 ‘보안회’를 창립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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