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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절박함 속에서 내어준 군사주권…76년째 미완으로 남은 전시작전통제권

1950년 7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에게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6·25전쟁 발발 불과 20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서한에는 “현재의 전쟁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대한민국 육·해·공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총사령관에게 이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한 작성일은 7월 14일이지만 맥아더에게 전달된 날은 7월 15일로 기록돼 있다. 맥아더는 이튿날 이를 수락했다.

패전의 공포 앞에서 선택한 지휘권 통합

당시 전황은 절망적이었다. 북한군은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국군은 병력과 장비의 열세 속에서 연이어 후퇴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회원국의 군사 지원을 결의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군사령부가 구성됐다.

한국군과 유엔군이 제각각 움직여서는 전선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작전지휘권 이양은 분산된 지휘체계를 하나로 묶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국군은 미 제8군과 유엔군 지휘체계에 편입됐고, 이는 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연합작전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전시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과 군사주권의 장기적 제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서한에는 분명히 ‘현재의 전쟁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정전된 뒤에도 작전통제권은 한국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어진 권한

1953년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에도 유엔군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계속 행사했다.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면서 그 권한은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넘어갔다.

한국은 19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을 되찾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은 아직 전환되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은 현재도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한미 정상도 전작권 전환을 위한 동맹 차원의 협력을 지속하기로 확인했다.

작전통제권은 군대의 소유권이나 국가 통수권 전체를 넘기는 개념은 아니다. 대통령은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이고 한국군의 인사·군수·행정 권한도 한국 정부에 있다. 다만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국군의 작전을 누가 주도하고 명령할 것인가는 국가주권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동맹과 자주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와 전쟁 억제를 위한 중요한 안보 기반이다. 그러나 동맹의 필요성이 자주국방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건강한 동맹은 어느 한쪽의 영구적인 의존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대등한 책임 위에서 성립해야 한다.

1950년 7월 15일의 결정은 국가 존망이 위태롭던 순간의 비상조치였다. 그 결정을 오늘의 기준으로 단순히 굴욕이나 치적으로만 규정해서는 역사의 실체를 놓치게 된다.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76년이 지난 오늘에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전쟁을 지휘할 역량과 책임을 갖추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역사는 시대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그 절박함을 영구적인 질서로 고착시키지 않는 데서 진전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한미동맹을 약화하는 선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동맹의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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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50년 7월 15일, 국군 작전지휘권 이양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50년 7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에게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6·25전쟁 발발 불과 20일 만에 내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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