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판 과거시험이라 할 수 있는 사법고시는 판사, 검사, 변호사 또는 군법무관에 필요한 학식과 능력의 유무 등을 검정하기 위한 시험으로 해방 직후인 1947년 치러진 ‘조선변호사 시험’으로 시작됐다. 이승만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고등고시령’이 제정되고 1950년 제1회 ‘고등고시사법과 시험’이 치러졌다. 사법고시는 정권이 바뀌며 여러 변화를 거쳤는데 특히,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을 도입하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법’이 제정됐다. 그 후, 2017년 11월 7일 마지막 사시 합격자와 함께 사법시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18년 이후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이 법조인이 되는 관문이 되었다. 판·검사가 되기까지는 공부..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와 이와 연관된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박물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일제 강점기 철거 직전의 광화문을 살려낸 양심적인 일본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창립된 조선 민족미술관이 모태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박물관의 시작 연도는 1946년 미군정시대에 개관한 국립 민족박물관으로 본다. 그 후 1950년 국립 민족박물관은 국립 박물관에 흡수 통합되어 남산 분관이 됐지만 1966년 한국민속 박물관으로 분리되었고 이후 1975년 한국 민속박물관으로 명칭 변경 후 1979년 국립 중앙박물관 소속으로 개편되면서 국립민속박물관이 되었다. [시사의창 2024년 6월호=민관홍(우리문화숨결 경복궁해설사)] 국립민속박물관은 그 위상이 바뀔 때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대화재의 소식을 자주 듣고 보게 된다. 화재의 발화 원인이 정확히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화재의 규모는 너무 커서 유럽 소국의 크기만큼 되는 것도 있고 피해 규모는 국가 총예산의 수십 프로가 된다는 등의 뉴스가 해외토픽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 대형산불의 시초인 1996년 고성산불, 2005년 4월 5일 일어난 양양의 산불은 천년 고찰인 낙산사 대부분을 태웠고 보물 동종도 녹여버려 우리 국민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2010년 이후에도 화재 피해액이 1,000억 원이 넘는 대형산불이 고성, 강릉, 인제산불(2019.04.04. 피해액 2,518억), 안동산불(2020.04.24 피해액 1..

시사의창 3월호를 못 본 독자를 위해 경회루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경회루지는 원래 백악산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노면으로 흘러드는 습지였다. 태조 이성계는 1395년에 이곳에 작은 정자를 짓고 정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습지에 지은 작은 정자가 자주 기울자 태종 이방원(1412년)은 노비 출신 건축가 박자청에게 이곳에 연못을 넓게 파고 정자를 지어서 정비하라고 명하였다. 태종은 자신의 생각보다 과하게 정비된 경회루지만 내심 만족하여 하륜에게 작명을 맡겨 ‘경회’(왕과 신하가 덕으로 만나는 경사스러운 모임)라 이름 짓고 경회루의 현판을 양녕대군에게 쓰게 하였다. 성종 때(1474년)는 경회루의 대대적 보수가 필요하여 새로 짓는 수준의 공사를 하였는데 이때 1층 바깥쪽 사각기둥에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