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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대화재의 소식을 자주 듣고 보게 된다. 화재의 발화 원인이 정확히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화재의 규모는 너무 커서 유럽 소국의 크기만큼 되는 것도 있고 피해 규모는 국가 총예산의 수십 프로가 된다는 등의 뉴스가 해외토픽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 대형산불의 시초인 1996년 고성산불, 2005년 4월 5일 일어난 양양의 산불은 천년 고찰인 낙산사 대부분을 태웠고 보물 동종도 녹여버려 우리 국민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2010년 이후에도 화재 피해액이 1,000억 원이 넘는 대형산불이 고성, 강릉, 인제산불(2019.04.04. 피해액 2,518억), 안동산불(2020.04.24 피해액 1,063억), 울진, 삼척산불(2022.03.04. 피해액 9,086억) 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건물화재는 난방을 사용하는 겨울철에 일어나고 산불은 건조하고 마른 가지와 마른 초지가 있는 봄철에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산불도 봄철인 4월과 5월에 집중되는데 지금이 딱 그 계절이라 경각심을 깨우는 이유에서 ‘경복궁의 불귀신(화마)을 어이 할꼬?’라는 제목으로 역사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시사의창 2024년 5월호=민관홍(칼럼니스트, 우리문화숨결 경복궁해설사)]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이전 왕조시대의 건축물은 목재가 주재료이다. 담은 흙이나 돌로 쌓고 지붕은 기와나 볏짚을 엮은 이엉을 올린 것이며 나머지 부분은 거의 목재로 짓는 것이 조선시대 일반적인 건축물의 형태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건축재료도 예외가 아닌데 목조건물의 가장 큰 취약점은 화재이다. 목재는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도 있고 친환경적인 재료라는 점에서 현대에서도 재조명되는 재료이지만 방화제도나 소방 기구가 제대로 있지 않은 조선시대에 화재는 일단 시작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재앙인 것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경복궁에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는데 세종 8년(1426년 2월 15일)에는 화적의 방화로 한양에 큰 불이 나서 한양 가옥의 17%인 2,400여 호가 불에 타고 경복궁의 일부 전각도 불에 타버렸다. 이때 세종과 세자였던 문종은 횡성으로 강무(사냥을 겸한 군사훈련)를 나가서 도성에 없었는데 임신 중인 소헌왕후가 화재진압을 총괄 지휘하였다고(조선왕조실록, 세종 8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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