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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 2024년 4월호=김동식 칼럼니스트] 업(業)이라는 말은 가르마(krama). 갈마(kamma)라 한다. 불교의 윤리 사상은 업설(業說)을 구체적 행동을 실천하는 계율(戒律) 사상(思想)에 잘 나타나 있다.

 

부처님께서 인간의 대상을 법(法)이라 규정하셨는데 법이라는 말은 법률(法律)이라는 개념으로 흔히 쓰이지만 인도에서는 자연법칙(自然法則), 필연적(必然的)인 것, 의지(意志), 자연물(自然物) 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인간에게는 분명히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어 여기에 작용을 가하면 필연적인 반응을 보이는 성질이 나타나 업을 일으키지만, 자연물(自然物)은 의지(意志)가 없어 업(業)의 작용을 받으면 단지 필연적(必然的)으로 반응을 보일 따름이다.

 

인간의 의지적 작용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 하고, 이러한 업(業)에 대해서 그 대상이 나타내는 필연적(必然的)인 반응을 보(報)라고 한다. 업(業)은 원인(原因)이고 보는 결과(結果)이므로 업인(業因)은 과보(果報)로 표현한다.

 

업(業)에는 반드시 보(報)가 따를 것이고, 그들의 성질(性質)은 상응(相應)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업보(業報)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因)과 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의 성질 또한 동일성을 띄게 된다. 즉 업(業)이 선(善)이면 보도선(寶刀善)이고, 업이(業) 악(惡)이면 보도악(寶刀惡)인 것이다. 이른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因)과 률(律)인 데, 업설(業說)에 의하면 업(業)을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 두가지로 나누어 보고 있다.

 

1)사업(思業): 사업(思業)은 뜻으로 활동하는 정신 내부의 의업(意業)을 말한다.

2)사이업(思已業): 사이업(思已業)은 의업(意業)이 말과 몸으로써 표현(表現)되었을 때를 말한다. 따라서 자기의 행동(行動) 행위(行爲)에 대해서 책임(責任)을 져야 한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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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칼럼] 인(因)과 법칙(法則)에 어긋나는 삼세(三世)의 업보설(業報說)은 어떤 것인가? - 시사

[시사의창 2024년 4월호=김동식 칼럼니스트] 업(業)이라는 말은 가르마(krama). 갈마(kamma)라 한다. 불교의 윤리 사상은 업설(業說)을 구체적 행동을 실천하는 계율(戒律) 사상(思想)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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