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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의 특별함이 콩쥐팥쥐 앵곡마을에 퍼트린 행복바이러스

 

언제부터인가 한옥이 인기몰이를 하는가 싶더니 그 열기가 현재에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한옥이라는 말은 구한말 문호 개방과 함께 양옥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에 대비되는 의미로 재래식 가옥들을 한옥이라 부르게 되었다. 외국인들에게 비친 한옥은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이 살고 있는 주택을 지칭한 것으로써 ‘조선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눈앞 풍경과 고즈넉한 분위기, 때로는 비 오는 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까지도 시각과 청각 모두 행복해지는 그런 곳이 바로 한옥이다. 국내에는 전주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과 은평한옥마을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전남 강진의 달빛한옥마을 등 전국 곳곳에는 같아 보이면서도 조금씩 다른 느낌의 한옥마을들이 의외로 많다. 한옥의 높은 인기에 한옥으로 지어진 개별 숙박시설들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일반 한옥 숙박시설과 결이 다른 곳이 있으니 바로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이 자리 잡은 전주 바로 옆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에 위치한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곳, 그곳의 특별함에 대해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한다.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 김매순 회장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 입구
김매순 회장이 권성수 작가에게 의뢰해 공들여 제작한 콩쥐상은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사진 명소다.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 야경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의 이런저런 풍경

[시사의창 2024년 5월호=정용일 기자] 전북 완주의 어느 작은 마을에 마법을 불러일으킨 ‘콩쥐팥쥐 관광한옥리조트’의 김매순회장은 늘 그의 고향 전라북도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전북 김제 원평이 고향이었던 김 회장은 한옥에서 자랐고, 그 집은 현재 문화재가 되었다. 1991년에 서울로 상경한 그는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고향인 전북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만은 늘 한결같았다.

그러던 중 김 회장은 2011년 크게 사기를 당하고 수많은 소송을 하느라 제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소송에만 전념하고자 단 한 명의 직원도 없이 전주로 회사 3개를 모두 이전하여 혼자 내려오게 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며 김 회장에게는 참으로 외롭고 힘든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사무실 임대료를 못내 쫓겨나게 되었다며 사무실 한 칸만 내어주면 안 되겠냐고 하여 김 회장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그 지인에게 보조키를 만들어주고자 열쇠집 사장을 불렀다.

3개의 회사명이 붙어 있는 김 회장의 회사 간판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열쇠집 사장은 김 회장에게 “뭐 하는 회사예요?”라고 물었고 김 회장은 “시행하는 회사예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다시 열쇠집 사장은 완주군의 ‘이서’라는 곳에 대한 아파트 건설 비전을 이야기해 주었고, 김 회장은 그 대화를 계기로 다음 날 처음으로 이서라는 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후 열흘이 지난 2016년 9월 10일경 열쇠집 사장이 다시금 사무실을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콩쥐팥쥐 전래동화마을에 관한 자료들을 한 움큼 들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가 앵곡마을과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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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탐방] 사랑이 듬뿍 담긴 잘 지은 한옥, 그 정성과 진심이 방문객들에게 제대로 통했다! - 시

언제부터인가 한옥이 인기몰이를 하는가 싶더니 그 열기가 현재에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한옥이라는 말은 구한말 문호 개방과 함께 양옥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에 대비되는 의미로 재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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