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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상 뒤 발표한 공동성명, 단독정부와 동족상잔을 막으려 한 절박한 외침

1948년 5월 6일,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은 평양 남북협상에 참석한 뒤 서울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이 한반도 영구분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성명은 해방 직후 한반도 정치사의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5·10 총선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남쪽에서는 유엔 감시 아래 가능한 지역에서라도 선거를 치러 정부를 세우자는 흐름이 강해졌고, 북쪽에서는 이미 독자적 정권 수립의 구조가 빠르게 굳어지고 있었다. 김구와 김규식은 이 거대한 분단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

두 사람은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 지도자들이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외국 군대 철수 문제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또한 남과 북이 동족상잔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공동성명은 단정 수립 문제, 통일민족국가 수립 방안, 전쟁과 동족상잔 방지에 초점을 맞춘 문서였다.

물론 남북협상은 성공하지 못했다. 북측과 소련 측의 정치적 계산,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단독정부 추진, 냉전 질서의 압박이 맞물리면서 김구와 김규식의 구상은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도를 가볍게 다룰 수는 없다. 그것은 분단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정치적 몸부림이었고, 전쟁을 예감한 지도자들의 비상한 경고였다.

김구는 귀환 직후 “첫 숟가락에 배부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하며 남북이 다시 만나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규식 역시 통일의 문이 열렸으니 대중이 이를 밀고 가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당시 두 사람의 발언에는 권력 획득보다 민족의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오늘 5월 6일을 다시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분단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운명이 아니었다. 선택과 침묵, 외세의 개입과 내부 권력투쟁, 그리고 대화의 실패가 겹쳐 만들어진 역사였다. 1948년 5월 6일의 공동성명은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가 갈등을 키우는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파국을 막는 마지막 장치가 될 것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패한 평화의 기록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유산이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긴 공동성명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대결의 언어가 정치를 압도할 때, 누가 다시 대화의 문을 열 것인가.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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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추적] 1948년 5월 6일, 김구와 김규식은 분단 앞에서 마지막 경고를 남겼다 - 시사의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48년 5월 6일,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은 평양 남북협상에 참석한 뒤 서울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이 한반도 영구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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