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MALL

 

강양동 기습에서 삼둔자·봉오동 승전으로 이어진 항일무장투쟁의 도화선

1920년 6월 4일 새벽, 북간도 삼둔자를 근거지로 삼았던 독립군 소부대가 두만강을 건넜다. 규모는 30명 안팎이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 그곳에는 일제 헌병 국경초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날 작전은 “국내진입작전”의 일환으로 독립군이 강양동으로 진격해 일제 헌병순찰소대를 격파한 뒤 다시 삼둔자로 귀환했다.

이 작전은 단순한 국경 충돌이 아니었다. 빼앗긴 조국의 영토로 다시 들어간 무장 독립군의 정치적 선언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 통치의 공간으로 만들려 했지만, 독립군은 그 땅을 여전히 되찾아야 할 조국으로 인식했다. 총성은 짧았으나, 그 의미는 깊었다. 식민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간 6월 4일의 기습은 이후 삼둔자 전투와 봉오동 전투로 이어지는 항일무장투쟁의 도화선이었다.

강양동 기습으로 타격을 입은 일본군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홍범도와 최진동 휘하의 독립군이 두만강을 건너 강양동의 일본군을 기습했고, 일본군 1개 소대를 격파한 뒤 화룡현 삼둔자로 돌아오자 일본군 제19사단은 패전 소식을 접한 뒤 야스가와 소좌가 이끄는 병력을 출동시켜 독립군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추격은 곧 일본군의 오판으로 바뀌었다. 독립군은 지형을 읽었고, 적의 이동 경로를 예측했다. 삼둔자 일대에서 일본군을 끌어들인 뒤 공격하는 방식은 이후 봉오동 전투에서 더욱 정교하게 반복됐다. 일본군은 두만강을 건너 삼둔자에 이르러 무고한 한인 양민을 살상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에 독립군이 삼둔자 서남방 요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해 격퇴했다.

6월 4일의 강양동 기습은 사흘 뒤 봉오동 승전으로 이어졌다. 

봉오동 전투는 북간도 독립전쟁의 상징적 승리로 남았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를 사령관으로 한 대한북로독군부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 19사단 예하 병력을 상대로 거둔 승전이며, 이 승리가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높이고 군사적 통일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역사는 때로 거대한 전투보다 그 전투를 가능하게 만든 첫걸음을 더 깊이 기억해야 한다. 1920년 6월 4일 새벽의 두만강 도강은 식민지 백성이 침묵을 거부한 순간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도 주권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강양동으로 향한 독립군의 발걸음은 봉오동의 승리로 이어졌고, 그 승리는 다시 “조선은 끝나지 않았다”는 민중의 선언으로 남았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김성민의역사추적 #6월4일 #삼둔자전투 #강양동기습 #봉오동전투 #홍범도 #최진동 #항일무장투쟁 #독립운동 #시사의창

https://sisaissue.com/View.aspx?No=4101230

 

[김성민의 역사추적] 1920년 6월 4일, 두만강을 건넌 독립군의 반격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20년 6월 4일 새벽, 북간도 삼둔자를 근거지로 삼았던 독립군 소부대가 두만강을 건넜다. 규모는 30명 안팎이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 그곳에는

sisaissue.com

 

LIST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