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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6월 2일, 부패한 권력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반공법의 칼날 앞에 선 문학과 언론

1970년 6월 2일 새벽, 한 편의 시가 권력의 심장을 찔렀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표적이 됐다. 시인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둘러싼 이른바 ‘오적 필화사건’이다.
「오적」은 월간 『사상계』 1970년 5월호에 실린 작품이었다. 김지하는 이 시에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부패한 기득권의 상징으로 세웠다. 제목부터 을사늑약의 ‘오적’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풍자였다. 권력과 자본, 관료와 군부가 결탁한 시대의 치부를 문학의 언어로 해부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풍자를 토론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권력은 시를 국가안보의 문제로 바꿔치기했다. 6월 2일 새벽 중앙정보부와 경찰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인쇄물 10만여 부를 압수했고, 김지하를 비롯해 『사상계』 관계자 등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문학 논쟁이 아니었다. 부패를 비판한 목소리를 ‘이적’의 언어로 몰아붙인 국가권력의 폭력이었다. 권력층의 탐욕을 고발한 시를 두고 정권은 계층 갈등 조장과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씌웠다. 비판을 범죄화하고, 풍자를 안보 위협으로 포장한 셈이다.
『사상계』 역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이 잡지는 한국 지성사의 한 축으로 평가받았지만, 「오적」 게재 이후 정권의 집중 압박을 받았다. 결국 1970년 9월 등록취소 처분을 당했고, 이후 법정 다툼 끝에 승소했으나 실질적 복간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국가폭력의 그림자도 다시 확인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4년 『사상계』 편집인 김승균 관련 사건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 후속 조치를 권고했다. 당시 수사 과정의 불법 연행, 가혹행위, 허위자백 강요가 확인됐다는 판단이었다.
1970년 6월 2일의 의미는 오늘에도 선명하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을 비판할 자유, 부패를 풍자할 자유, 불온하다는 낙인 없이 말할 자유가 보장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숨을 쉰다.
「오적」 필화사건은 묻는다. 국가는 비판을 감당할 품격을 가졌는가. 언론과 문학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대의 부패를 기록할 용기를 지녔는가. 그 질문은 반세기를 건너 오늘의 한국사회 앞에 다시 놓였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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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추적] 시 한 편이 권력을 흔든 날, 김지하 ‘오적’ 필화사건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70년 6월 2일 새벽, 한 편의 시가 권력의 심장을 찔렀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표적이 됐다. 시인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둘러싼 이른바 ‘오적 필화사건’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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