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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정상화의 이름으로 봉합된 식민지 책임의 미완성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은 도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이른바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했다. 이 조약은 12월 18일 발효됐고, 양국은 해방 이후 단절돼 있던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정상화했다. 조약에는 청구권·경제협력, 재일교포 법적 지위, 어업, 문화재·문화협력 관련 부속 협정이 함께 묶였다.
그러나 이날의 조인은 단순한 외교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식민지 지배의 상처,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 일본의 법적 책임, 독도와 어업 문제, 문화재 반환 문제까지 한꺼번에 얽힌 현대사의 거대한 매듭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자금 확보와 국제관계 재편을 명분으로 협정을 추진했지만, 학생·야당·지식인·시민사회는 이를 ‘굴욕 외교’라 비판하며 거세게 저항했다. 한일협정 반대운동은 1964년 3·24 시위와 6·3항쟁, 1965년 비준 반대투쟁으로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과거사였다. 조약은 1910년 이전 한일 간 조약들이 “이미 무효”라고 규정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애초부터 불법이었다는 점을 명쾌하게 못 박지 못했다. 이 모호한 문장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강제동원, 위안부, 배상 책임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의 불씨로 남았다. 국교는 열렸지만, 정의는 완성되지 못했다.
한일기본조약은 한국 경제사에서 일정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자금과 기술은 산업화 과정에 활용됐다. 그러나 그 대가로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식민지 책임의 역사적 청산은 국가 간 합의라는 이름 아래 주변으로 밀려났다. 발전의 속도는 빨랐지만, 기억의 회복은 더뎠다.
오늘 6월 22일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익은 필요하지만, 국익이 역사를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외교는 현실의 언어로 움직이지만, 정의는 피해자의 언어로 기록돼야 한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가 미래를 말할 때, 과거의 고통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역사는 합의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식민지 지배와 인권 침해의 역사는 더 그렇다. 1965년 6월 22일은 한일 양국이 손을 잡은 날이었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화해란 무엇인가, 책임 없는 정상화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품게 된 날이었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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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은 도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이른바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했다. 이 조약은 12월 18일 발효됐고, 양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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