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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총성이 한반도를 전쟁의 심연으로 몰아넣은 날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의 운명은 총성과 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기습 남침을 감행했고, 평화롭던 일요일 아침은 순식간에 전쟁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북한군은 옹진반도와 개성, 동두천, 포천, 춘천, 주문진 등 38선 전역에서 지상공격을 개시했고, 동해안 일부 지역에는 상륙부대까지 투입했다.
6·25전쟁은 단순한 국지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단 체제가 폭력으로 폭발한 사건이었고, 냉전 질서가 한반도 민중의 삶을 짓밟은 비극이었다. 북한군은 개전 사흘 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했다. 전쟁은 남과 북의 병사만이 아니라 농민, 노동자, 여성, 아이, 노인까지 삶의 터전에서 밀어냈다.
국제사회도 즉각 움직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50년 6월 25일 결의 제82호를 채택해 북한군의 공격을 ‘평화의 파괴’로 규정하고, 적대행위 중지와 38선 이북 철수를 요구했다. 이후 유엔군 참전으로 전쟁은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됐다.
전쟁의 상처는 숫자로도 참혹하다. 국군과 유엔군의 인명 피해는 77만6,030명에 달했고, 민간인 인명 피해도 사망·학살·부상·납치·행방불명 등을 합쳐 99만968명으로 집계됐다.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마을과 가족, 기억과 언어 안에서도 깊은 폐허를 남겼다.
오늘 6월 25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증오를 되살리는 일이 아니다. 책임의 출발점을 흐리지 않되, 다시는 국가 권력과 이념의 이름으로 시민의 생명이 짓밟히지 않도록 역사를 직시하는 일이다. 6·25전쟁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평화는 선언으로 완성되는가, 아니면 불평등과 적대, 분단의 구조를 바꾸는 실천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는가.
1950년 6월 25일은 전쟁의 날이자, 평화를 다시 묻는 날이다. 역사는 참혹한 폐허 위에서도 시민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 기억을 제대로 세우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6·25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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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의 운명은 총성과 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기습 남침을 감행했고, 평화롭던 일요일 아침은 순식간에 전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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