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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 위에서 인류가 평화를 제도화한 날

1945년 6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헌장이 서명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 세계 각국은 다시는 전쟁의 광기가 인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국제기구의 토대를 세웠다. 유엔은 유엔헌장을 “유엔의 창립 문서”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 헌장은 1945년 10월 24일 발효됐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는 50개국 대표들이 참여했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1945년 6월 25일 50개 정부 대표들이 유엔헌장과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을 만장일치로 승인했고, 다음 날인 6월 26일 153명의 대표가 헌장에 서명했다. 폴란드는 회의에 대표를 보내지 못했지만 이후 서명국에 포함됐다.
유엔헌장의 핵심은 단순한 외교 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을 국가의 권리처럼 행사하던 낡은 질서에 대한 문명적 반성이었다. 강대국의 이해가 국제정치를 좌우하던 시대에,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모든 국가의 주권 평등,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이라는 원칙이 세계 질서의 중심에 놓였다.
그러나 유엔의 역사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 그 자체였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은 국제질서의 안정 장치이면서 동시에 강대국의 특권으로 작동했다. 전쟁과 학살, 점령과 난민, 기후위기와 빈곤 앞에서 유엔은 때로 무력했고, 때로는 가장 마지막에 남은 국제적 양심의 언어가 됐다. 2025년 유엔헌장 80주년을 맞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헌장은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메뉴가 아니라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 역시 유엔의 역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해방 이후 분단, 전쟁, 휴전, 평화체제 논의까지 한국 현대사는 국제질서의 격랑 속에서 전개됐다. 유엔헌장이 말한 평화와 인권의 원칙은 오늘의 한반도에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힘으로 평화를 말하는 시대일수록, 평화는 더 강한 제도와 더 깊은 민주주의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1945년 6월 26일은 인류가 완전한 평화에 도달한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화를 향한 불완전한 약속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 약속이 흔들릴 때마다 역사는 묻고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운 헌장을 우리는 아직도 지킬 의지가 있는가.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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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45년 6월 26일, 유엔헌장 서명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45년 6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헌장이 서명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 세계 각국은 다시는 전쟁의 광기가 인류를 집어삼키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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