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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오판이 시민의 퇴로를 끊은 새벽

1950년 6월 28일 새벽, 서울 한강 위에서 한국전쟁 초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 가운데 하나가 벌어졌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급속히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기 위해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문제는 다리 위에 있었다. 한강인도교는 당시 서울 시민과 군 병력이 한강 이남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핵심 통로였다. 피난민과 차량, 병력 일부가 아직 다리를 건너고 있던 시각, 폭발은 예고 없이 단행됐다. 2013년 관련 판결문은 1950년 6월 28일 오전 2시 30분 정부가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했으며, 당시 600~700명가량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고 적었다.
한강인도교 폭파는 단순한 군사작전의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위기 속에서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 사건이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시민의 생명은 작전상의 부속물이 될 수 없다. 국가가 시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고, 안전한 대피 시간을 보장하지 않은 채 생명의 길을 끊었다면 그 책임은 역사 앞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폭파는 북한군의 진격을 일정 부분 지연시키는 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 한강교 폭파는 국군 주력부대와 수많은 시민을 강북에 남겨둔 채 퇴로를 차단한 사건으로, 한국 전사에 오점을 남겼다. 또한 폭파 책임자였던 최창식 대령은 1950년 9월 총살됐으나, 이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기록이 있다.
이 사건은 전쟁의 비극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 없는 권력, 혼선에 빠진 지휘 체계, 시민보다 체면을 앞세운 국가 운영이 어떤 참극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수도를 지키겠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시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는 역사 속에서 냉정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1950년 6월 28일을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과거를 단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위기일수록 국가는 더 투명해야 하고, 권력은 더 책임져야 하며, 시민의 생명은 어떤 명령보다 앞서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한강인도교 폭파의 새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날의 굉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권력은 과연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역사는 그 질문을 지우지 않는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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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50년 6월 28일, 한강인도교 폭파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50년 6월 28일 새벽, 서울 한강 위에서 한국전쟁 초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 가운데 하나가 벌어졌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급속히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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