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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명의 변호사가 연 인권 변론과 권력 감시의 출발점

1988년 5월 28일, 한국 현대사의 법정 한복판에 새로운 이름 하나가 등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곧 민변이다. 민변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9월 노동자대투쟁이 만든 민주화의 열망을 배경으로, 51명의 변호사가 모여 창립한 진보적 법률가단체로 출발했다.

이날의 창립은 단순한 직능단체 출범이 아니었다. 군사독재 시절 법은 시민을 보호하는 방패보다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문, 시국사건, 국가보안법, 노동 탄압, 언론 통제 앞에서 시민이 기댈 수 있는 제도적 통로는 협소했다. 민변의 출범은 그 좁은 통로를 넓히겠다는 법률가들의 공개 선언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는 민변 창립의 뿌리를 구로동맹파업 공동변론, 1986년 정의실천법조인회 결성,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부천서 성고문사건·김근태 고문 사건 등의 폭로와 변론 흐름에서 찾는다. 이어 1988년 5월 28일 정법회와 청년변호사회가 결합해 민변이 창립됐다고 정리한다.

민변의 의의는 법률가가 법정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서 선명하다. 오픈아카이브는 민변 창립이 구조적 인권침해에 대한 지속적·조직적 대응을 가능하게 했고, 민주화운동 진영 안에서 전문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개혁과 진보의 대안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창립 초기 민변은 국가보안법 사건과 군사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형사사건 변론을 맡았다. 이후 김포공항 인근 주민 소음피해 집단소송, 양심적 병역거부, 호주제 위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소송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8년의 민변 창립은 한국 민주주의가 거리의 함성에서 제도의 언어로 이동하던 장면이었다. 시민의 절규가 법률 문장으로 번역되고, 억울한 개인의 사건이 사회 구조를 묻는 공적 의제로 확장되던 시기였다. 그날의 의미는 오늘에도 낡지 않았다. 법이 강자의 울타리가 아니라 약자의 피난처가 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일상 속에서 숨을 쉰다.

권력은 늘 법의 이름을 빌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법률가의 양심은 더욱 중요하다. 5월 28일의 민변 창립은 한국 사회에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민주주의의 품격은 여전히 시험대에 오른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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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추적] 1988년 5월 28일, 법정에 민주주의의 이름을 세우다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88년 5월 28일, 한국 현대사의 법정 한복판에 새로운 이름 하나가 등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곧 민변이다. 민변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9월 노동자대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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