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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국회의 선택으로 이승만 대통령·이시영 부통령 탄생
민주공화국의 출발점이었지만 분단과 권위주의의 그림자도 함께 드리운 날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초대 부통령으로 이시영을 선출했다. 제헌헌법이 공포된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이날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로 진행됐다. 제헌헌법 제53조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각각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국회의 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 선거에는 제헌국회의원 196명이 참여했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은 180표를 얻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김구는 13표, 안재홍은 2표를 얻었고 서재필에게 던져진 1표는 무효 처리됐다.
부통령 선거는 한 차례 투표로 당선자를 결정하지 못해 2차 투표까지 이어졌다. 결선에서 이시영이 133표를 얻어 62표를 얻은 김구를 누르고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시영은 독립운동가 집안인 경주 이씨 6형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막대한 재산과 생애를 바친 인물이었다.
이승만과 이시영은 나흘 뒤인 7월 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했다.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면서 새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대통령제는 처음부터 예정된 결론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아무런 논쟁 없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었다. 헌법기초위원회가 마련한 초기 헌법안은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를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과 미군정이 대통령제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 국회가 채택됐다. 여기에 국무총리제를 결합한 절충적인 권력구조가 제헌헌법에 담겼다.
이 과정은 대한민국의 권력구조가 충분한 국민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보다는 당시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와 권력구도에 크게 좌우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될 가능성도 건국 초기부터 제도 안에 내재해 있었다.
민주공화국의 탄생과 분단정부의 한계
7월 20일의 대통령 선출은 왕이나 식민권력이 아닌 헌법과 의회를 통해 국가원수를 선출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역사적 진전이었다. 국민주권과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국가 운영의 토대로 선언하고, 근대적인 정부 체제를 구성하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출발을 온전한 민족국가의 탄생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5·10 총선거가 남한 지역에서만 실시됐고, 김구와 김규식 등 남북협상파는 분단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4·3의 참극 속에 일부 선거구의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제헌국회와 초대 정부의 수립은 민주공화국의 제도적 출발인 동시에 한반도의 분단이 정치체제로 굳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건국의 성취와 분단의 비극을 분리해 기억해서는 역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권력은 민주주의를 배반하기도 했다
초대 대통령에 오른 이승만은 이후 한국전쟁과 극심한 냉전 질서 속에서 권력을 강화했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거치며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건국기의 지도자였다는 공적이 헌정질서를 훼손한 책임까지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마침내 시민과 학생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4·19혁명으로 이어져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다.
역사는 한 인물을 영웅이나 악인이라는 단순한 틀에 가두는 작업이 아니다. 공적은 공적으로 평가하되, 권력 남용과 민주주의 파괴에는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성숙한 역사 인식이다.
민주주의는 선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1948년 7월 20일은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첫 장이 열린 날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뽑았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자의 선출보다 선출된 권력을 통제하는 데 있다. 언론의 비판, 국회의 견제, 사법부의 독립, 시민의 참여가 무너지면 선거를 통해 탄생한 권력도 얼마든지 독재로 변질될 수 있다.
78년 전 초대 대통령 선출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선명하다. 국가는 지도자 한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 역시 권력자의 선의로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시민이고, 헌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누구에게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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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선출하다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초대 부통령으로 이시영을 선출했다. 제헌헌법이 공포된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이날 선거는 국민이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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