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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남성 권력의 견고한 장벽을 허물다
여성의 정치적 진출을 확장했지만 민족주의와 소수자 차별이라는 그늘도 남겨

1960년 7월 21일, 오늘날 스리랑카로 불리는 실론에서 세계 정치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총리로 취임하며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세계의 정치는 사실상 남성의 독점 영역이었다. 여성에게 참정권조차 허용하지 않은 국가가 적지 않았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부차적인 역할로 취급하는 인식도 견고했다. 이러한 시대에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서 여성이 정부 최고책임자 자리에 오른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반다라나이케가 처음부터 정치인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는 농촌 여성과 아동의 복지를 위한 사회활동에 참여했지만 본격적인 정치 전면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총리였던 남편 솔로몬 반다라나이케가 1959년 암살되면서 그의 삶은 급격히 달라졌다.
남편이 창당한 스리랑카자유당은 구심점을 잃었다. 당 지도부는 반다라나이케에게 정치 참여를 요청했고, 그는 1960년 5월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어 같은 해 7월 총선에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끈 뒤 7월 21일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당시 44세였다.
반다라나이케는 취임과 함께 국방·외무 분야도 관장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냈고, 냉전 시기에는 비동맹 외교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다. 은행과 주요 산업의 국유화, 교육 개혁 등을 추진하며 식민지 시대의 경제·사회 구조를 재편하려 했다. 1972년에는 영국 왕실을 국가원수로 두었던 실론을 공화국으로 전환하고 국호를 스리랑카로 바꾸는 과정도 주도했다.
그러나 여성 지도자의 탄생이 곧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반다라나이케 정부는 불교와 싱할라족 중심의 국가 정체성을 강화했다. 싱할라어 우선 정책과 타밀계 주민에 대한 배제는 소수민족의 불안을 심화시켰다. 그의 정부가 추진한 민족주의적 정책은 훗날 스리랑카가 겪은 극심한 민족 갈등과 내전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언론 통제와 권력 집중, 족벌정치에 대한 비판도 그의 정치적 유산을 평가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반다라나이케의 등장은 분명 여성도 국가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의 권력 진입이 남편의 정치적 유산과 가문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은 당시 여성 정치의 한계 또한 보여준다. 한 여성은 권력의 정상에 올랐지만 수많은 평범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까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를 배출한 스리랑카에서도 여성의 의회 진출은 오랫동안 저조했다. 2024년 대통령선거 당시 스리랑카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5%대에 머물렀다. 여성 지도자 한 사람의 탄생과 여성 전체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가 서로 다른 문제임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반다라나이케의 역사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누가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권력이 누구의 삶을 보호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배제하는가는 더욱 중요하다는 질문이다.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뜨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정치가 진보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별을 뛰어넘은 대표성은 출발점일 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여성과 소수자,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가 국가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1960년 7월 21일은 한 여성의 개인적인 성공을 기념하는 날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의 문을 더 넓게 열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권력의 다양성이 인권과 평등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날이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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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역사 추적] 1960년 7월 21일,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 - 시사의창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1960년 7월 21일, 오늘날 스리랑카로 불리는 실론에서 세계 정치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총리로 취임하며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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