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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 2024년 4월호=김차중 작가] 나에게 수암골 이야기가 하나 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 아마도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네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이모는 아이가 생기질 않아 다섯 남매의 막둥이인 나를 잠시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순수 어릴 적 기억으로 그 집은 언덕 길가에 있었고, 아래로 급경사진 곳으로 오직 걸을 수 있는 길만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집으로 드나드는 문은 작은 대문이 있었고 대문 옆으로 보통 가게의 문으로 쓰이던 나무로 된 삐걱거리는 여닫이문이 있었다. 대문을 열면 어린아이의 눈으로도 작았던 마당이 간신히 정오의 햇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잔칫날이었는지 부엌에서 고기로 구슬 같은 완자를 만드는 이모의 손이 신기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먹었던 기억과 맛은 생각나질 않는다. 나는 반년 정도 이모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모가 엄마에게 나를 넘겨주었지만, 이모의 지극한 보살핌에 만족했던지 나는 엄마를 몰라보았다고 한다. 나의 기억에 남겨진 몇 개의 흑역사 중 한 가지이다.
40여 년이 흐르고 나는 다시 수암골에 올랐다. 수암골은 한국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높은 언덕에 정착하여 살게 된 마을이다. 수암골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이 마을 이름의 기원일까 생각하였는데 수암골은 수동과 우암동의 경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수암골은 서울의 마로니에 공원에서 낙산공원에 이르는 길처럼 좁은 골목과 벽화가 이어진 길로 가꾸어졌다. 2007년부터 ‘추억의 골목 여행’의 주제로 충북의 화가와 대학생들이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왕 닭과 왕자 병아리, 샤워하는 여인의 실루엣, 심순애의 결단을 기다리는 이수일과 김중배, 그리고 그대로 남아서 벽화가 된 새마을운동 마크와 표어인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글자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특별한 소재의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에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걸을 수 없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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